1. 예배음악매거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독자들에게 목사님의 근황에 대해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지난 2021년 5월부터 일년간 안식년을 가졌고 작년 6월에 캄보디아에 돌아왔습니다. 사실 안식년을 가질 계획이 없었는데, 그때가 캄보디아에 파송된 지 십 년째가 되었고 한편으로 프놈펜에 코비드가 너무 심각해져서 거의 등 떠밀리다시피 떠나게 된 안식년이었지요. 돌아보면 그 모든 시간표까지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하심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귀캄한 후에는 이제 제 2기 사역, 어찌보면 제 인생의 마지막 사역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고 부족하나마 더 열심을 내고자 합니다. 물론 그 전에 하던 대로 캄장신 강의, 프놈펜 호산나학교 앙상블 지도, 캄보디아선교사합창단 지휘를 계속하고 있으며 전세계적으로 진행되는 Global New Praise Video Festival 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한편 최근 주님 은혜로 프놈펜 외곽에 오픈하게된 뉴송센터(New Song Center)에서 이웃들을 위한 음악회, 동네 아이들을 위한 음악시간 등을 시작하였습니다.  

2. 유튜브 채널 ‘찬양신학 쉽게듣기’를 운영하시면서 찬양신학에 대한 인싸이트를 나눠주시고 계신줄 압니다. 찬양신학에 있어서 키워드를 뽑는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며, 그 이유를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찬양신학의 키워드는 “찬미의 제물”로 요약될 수 있으며, 찬양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 있다면 “찬양은 하나님께 무엇인가?”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몇년 전 예배음악 인터뷰에서 나누었던 내용과 같습니다. (아래 그중 핵심 내용을 적어보았습니다.)

미국에서는 요즘 찬양리더들을 ‘music guy’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사실 맞기도 하지만 정확하지 않은 표현입니다. 찬양사역자들은 음악전문가이며 동시에 말씀 전문가가 되어야 해요. 목사님들이 예배 자체를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는 제사장이라면 찬양사역자들은 찬미의 제사(히 13:15)를 드리는 제사장입니다. 한데 자기가 드리는 제물이 어때야 하며 어떻게 드려져야 하는지를 모른다면 이는 정말 한심한 일이지요. 그것을 제대로 배우려면 찬양에 관한 말씀만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전체를 공부해야 해요. 제가 치대생이었을 때, 해부학을 공부했는데, 사람의 몸 전체를 공부한 다음 머리를 따로 공부했어요. 치대생이라고 머리만 공부하면 안 되죠. 사람의 몸은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치아를 잘못 뽑았는데 심장에 박테리아가 침투하기도 하니까요. 말씀도 마찬가지예요. 조직신학을 통해 전체적인 구속사적 신학이 정립되면 그 위로 찬양신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찬양은 원래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개념입니다. 온 우주에 찬양을 받을 존재는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찬양에 대해 가르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찬양이 우리에게 무엇인가가 아니라 ‘찬양은 하나님께 무엇인가’입니다. 많은 교회와 많은 찬양사역자들이 이 점을 크게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찌하면 찬양을 은혜롭게 할까, 어찌하면 찬양을 통해 교인들을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인도할까 연구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찬양을 어떻게 하라는 가르침이 참 많은데 “은혜롭게” 하라는 말씀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바로 사람 중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 죄인들이 어떻게 은혜를 줄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는 성경이 명령하는 대로 “새 노래로, 아름답고 공교하게, 즐거운 소리로, 악기로, 극진히” 찬양을 준비하여 왕의 왕께서 받으실 만한 찬양을 올리는 것이요, 은혜는 그 찬양을 받으시고 기쁘신 하나님께서 주시든 안 주시든 그분의 뜻대로 하시는 것입니다. (예배음악 44호 중에서)

그런데 찬양에 대해 점점 더 깨달아가면서 새로운 키워드들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찬양의 세계는 우주보다 크고 영원하니까요. 요즈음 제가 유튜브 찬쉽강의 후반부(찬양신학 쉽게듣기 47-50강)를 준비하면서 점점 크게 느껴지는 것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입니다. 찬양은 바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거울과 같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관한 책이요, 하나님의 행하신 모든 일들도 결국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설명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성경에서 하나님의 본질에 관한 지식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신학적 주제일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성경에서 아직 제대로 찾지 못한 하나님의 본질이 바로 하나님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도 모태신앙인데 교회에서 그런 주제에 대해 평생 거의 배워본 일이 없으니까요. 다행히 요즈음 셰퍼(Francis Schaeffer)나, 벡비(Jeremy Begbie) 등의 뛰어난 신학자들에 의해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관한 좋은 책들이 쓰여지고 있고 저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우선 성경이 여러 곳에서 그렇게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고 (사 35:1-2, 시 27:4, 29:2, 96:6, 대상 16:29, 등),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우리가, 나아가 예수의 보혈로 구속받은 교회가 이런 말씀의 가르침에 따라 조금씩이라도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닮아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실제 목회현장은 늘 전쟁터와 같고, 그러다보니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의 군사라는 면만 너무 강조된 측면이 있어, 성경에서 보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인데, 바로 찬양이 표현하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어떤 영적 밸런스를 잡아줄 수 있다는 면에서도, 성서적 찬양은 반드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3.  ‘찬양신학 쉽게듣기’ 강의 중 33장좌까지 책으로 예솔에서 출판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간략한 책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부족한 자가 이런 책을 낼 수 있는 것 자체가 이적이요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책에 대한 소개는 책 서문에 잘 정리해 놓았으므로 그 중 일부를 여기에 옮겨봅니다.

이 책은 전체 66강의 중 절반인 33강이 들어있는, 그러니까 전반부입니다. 책 제목 “찬양신학 쉽게듣기”가 책의 내용과 성격을 이미 규정하고 있지요. 20여년 전 출판했던 “찬양의 성전”이 찬양전문인들과 목회자들을 위한 묵직한 교회음악이론서였다면, 이책은 찬양하도록 지음받은 모든 기독교인들, 나아가 모든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그들이 성서적인 찬양으로 주를 기쁘시게 하도록 돕는 책으로 내게 되었습니다. 안식년을 맞이하여 제2의 고향과도 같은 미국 켄터키주의 루이빌(Louisville)에서 유튜브강의 “찬쉽”(찬양신학 쉽게듣기의 약어)을 몇 개월 째 올리고 있었을 때, 김재선 장로님(예솔대표)으로부터 이 강의를 책으로 내고싶다는 메시지를 받게된 것이 이 책이 나오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원래 90강을 목표로 하여 그 절반인 45강까지를 1편에 넣을까도 생각했었는데, 그걸 다 채우지 못하고 제가 세상을 떠나거나 그 이전에 주님께서 오시거나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강의숫자를 줄였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강의가 다 준비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단, 제가 아는 것은 성경에 있는 찬양에 관한 비밀들을 캐기 시작하면 90강이 아니라 900강도 넘을 것이기에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제가 주님께 받은 것 만큼만 하려 합니다.

이 책의 원고는 유뷰트강의와 99% 일치합니다. 어쩌면 유튜브 강의를 듣는 것이 더 실감이 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책이 꼭 필요한 책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만약 단순히 제 강의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 이 책이라면, 저는 출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서 이 책이 꼭 필요한 이유들이 몇가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째, 독자가 자기가 원하는 속도대로, 찬찬히 생각을 정리하며 읽는 것은 그냥 강의를 듣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저는 유튜브강의 전문가에게 유튜브강의의 기본을 배웠는데, 그 첫 계명은 “15분”이었습니다. 즉, 15분을 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따금이지만 여러나라에서 찬양신학강의를 일주일씩 인도하는데 어떤 때는 강의하다보면 쉬지도 않고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그런데 유튜브 강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15분을 목표로 하고 그렇게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다보니 분량이 많은 것은 말을 빨리 해야해서 중요한 내용들에 시간을 충분히 할애하지 못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꼼꼼히 읽고 줄치고 질문도 써놓고, 새로 배운 것도 표시해놓으면 참 좋겠다는 분들에게 이 책은 좋은 반려자가 될 것입니다.   

둘째, 강의 중에 몇몇 중요한 인용문들이 나오는데, 때로 인용문의 출처를 찾지 못한 경우가 있긴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인용문은 출처를 찾아 미주를 달아놓았습니다. 이는 혹시라도 누군가 그 내용을 더 공부하고 싶은 경우에 도움이 되도록 하려함입니다. 또 인용문 외에도 다른 도움이 되는 내용들도 미주에 싣도록 하였습니다. 영어 및 독일어는 가급적 번역을 했지만 원문도 함께 기록하여 보다 정확한 지식의 전달을 도모하였습니다. 각주를 피한 것은, 이 책이 무슨 논문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하기위해서입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처음 읽을 때는 미주를 그냥 건너뛰어 다음 강의를 들으면 될 것입니다. 참고로 미주는 제가 졸업한 루이빌 남침례신학교(SBTS)에서 사용하던 시카고매뉴얼을 따르고자 노력했습니다.

나아가 강의내용과 연관이 있는 간증이나 좀 긴 인용문, 또 강의에 꼭 넣고 싶었지만 15분이 훨씬 넘어 강의에 포함될 수 없었던 내용들은 <참고>란에 기록하여 보다 폭넓은 이해를 도모했습니다. <참고>가 너무 장황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만, 그저 글솜씨 없는 교회음악 작곡가의 고백으로 읽어주셔도 감사하겠습니다.

시중에 보면 예배와 찬양에 대해 여러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와있습니다. 저와는 비교할 수 없이 공부 많이 한 분들의 책들도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책이 많이 출판되었다고 교회의 예배가 변하는 것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신학대학의 가르침과 실제 목회현장과는 너무 다릅니다. 저는 그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지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한가지는 교인들의 무지입니다. 대다수의 교인들은 하루하루 힘겨운 삶을 살다보니, 그저 교회에서 목사님 말씀듣고 힘을 얻고 은혜를 회복하고 또 한 주일을 견디고… 그런 반복적 패턴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목회자들은 그렇게 자신들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교인들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기도 합니다. (물론 대다수의 목회자들은 희생적으로 맡겨주신 영혼들을 섬기지만요.) 결국 자기 영혼에 대한 책임은 자기가 져야합니다. 천국에 가서 “우리 목사님이 이렇게 가르쳐주셨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라고 하나님께 변명한다고해서 자기 책임이 면제되지 않습니다. 그러려면 신자 개개인이 성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 책 저 책 보고, 나름 성경관, 구원관, 그리고 예배관, 나이가 찬양신학관이 분명해야 합니다. 이 책은 바로 그것을 돕고자 함입니다. 교인들이 잘 알면, 목회자는 더욱 공부할 수 밖에 없고, 바로 그런 목회자만이 이 시대에 하나님 원하시는 바로 그 일을 할 수 있고 교회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4. 새찬양후원회를 설립하시고 새찬양축제 개최 및, 전 세계적으로 어린이 찬송가 피아노 악보 제공 등 어린이 중심의 선교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어린이 음악의 키포인트는 무엇인지, 아이들에게 찬양을 가르칠 때 가장 염두해 두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물론 메오드 찬양, 즉 극진한 찬양의 회복을 위한 첫 단추로써의 어린이 찬양 등 여러가지 중요한 키포인트가 있겠지만 가장 시급한 것이 있다면 어린이들을 예배의 중심에 세워야한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교회들이 여러가지로 어린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적용하기도 합니다. 비록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참 반가운 일입니다. 또 누구나 어린 영혼을 사랑하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어린이들이 찬양으로 대예배의 중심에도 설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교회적인 공감대가 만들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것은 개신교회의 선봉이었던 칼빈과 마틴 루터의 아이디어입니다. 칼빈도 1537년 제네바 시의회에 제출한 논문에서 어린이들이 어른 예배 때 찬양을 준비해서 하는 것에 대해 언급했고 루터는 어린이들을 위한 찬양곡을 스스로 작곡함은 물론, 독일 역사상 처음으로 동요(Kinderlied)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개신교에서 종교개혁주간은 지키면서 이런 중요한 내용은 잊고 있으니… 요즘 주일학교가 텅텅 비어가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이제라도 교회는 잃어버렸던 개혁자 정신을 되찾아야 하고 어린이 찬양을 예배 가운데로 되찾아야 합니다. 새찬양축제는 지난 이십여년 간 바로 이 목표를 추구해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새찬양후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합니다. 온 교회가 일어나 우리 교회에 맡겨주신 귀한 어린 영혼들의 찬양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예배가 회복되고 어린 영혼들이 다시금 교회에 돌아올 것입니다. 

5. 캄보디아 장로교신학대 교회음악과 교수로, 캄보디아 음악선교사로 활동하시면서 보람된 일과, 반면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하셨는지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감사한 일은 저희 신학교의 목회학 정규과정에 찬양신학과목이 신설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학년에 따라 또 제 사정에 따라 그 과목이 가르쳐지지 않는 년도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찬양신학과목 수강이 가능하다는 자체가 교회사적으로도 획기적인 일이라는 것이지요. 사실 목회학 과정에 찬양신학과정이 없는 것이 이상한 일입니다. 우리 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예배, 그 예배의 핵심을 이루는 찬미의 제사에 대해 장래 목회자들이 배우지 못하고 신학교를 떠난다면, 그가 섬기게 될 교회에서 성서적인 예배와 찬양의 회복은 거의 기대할 수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찬양신학 자체가 어쩌면 너무 새로운 분야이기에 가르칠 교수진을 찾기도 너무 어렵지요. 저 역시 심히 부족한 자이지만 그저 주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벌써 이곳에서 가르친지 꽤 되어 제가 찬양신학을 가르쳤던 캄보디아 학생이 캄장신 교수요원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참 주님 은혜 감사하고 개인적으로도 큰 보람이 느껴집니다.   

물론 어려움이 왜 없겠습니까? 무엇보다도 금년에 선교 100주년을 맞이하는 캄보디아 교회가 아직 너무 미약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0.5%도 안되는 전도율) 그런데 그렇게 미약한 교회가 하나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힘들구요. 우리 선교사들이 뭔가 좋은 본을 보여주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미안한 마음도 있습니다. 특히 캄보디아는 불교국가라서 불교문화가 너무 뿌리 깊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안수까지 받고서도 도로 불교로 돌아가는 학생이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것이 가능한 곳이 바로 캄보디아입니다. 결코 쉽지 않습니다. 어떤 교인이 너무 열심이라 참 감사했는데 알고보니 그 교회 건물이 탐이나서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캄보디아는 외국인이 땅을 살 수 없는 나라라서 명의를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넘겨야하는데… 그 와중에 선교사님들이 손해도 많이 보고 속기도 하고…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제가 정성을 다해 음악을 가르치고 교회에서 침(세)례까지 받은 학생이 신앙을 잊어버리고 세속음악을하는 것을 보면 참 마음이 아픕니다. 그렇지만 저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큰 그림을 그리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6. 마지막으로 목사님의 향후 행보에 대해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1권이 나왔으니 어찌하든 찬양신학 쉽게듣기 2권까지는 완성하는 것이 주님 뜻이라 생각됩니다. 이미 찬쉽 유튜브 강의는 48강까지 올린 터이고 나머지 강의도 웬만큼 제 머리에 있지만… 1권이 나오고보니 더욱 책임감이 커지고 제 부족함이 크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앞으로 한 강의 한 강의가 더 조심스럽습니다. 이제 2권을 주님의 명으로 알고 한 강의 한 강의 준비하여 금년이 다 가기 전에 2권을 내도록 목표로 삼고 정진할 것이지만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오는 3월 13일에는 제 생애에 참 특별한 날이기도 합니다. 카네기홀에서 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인, 피아노를 위한 “12개의 거룩한 종소리”(12 heilige Glockenklänge für Klavier/ 12 Holy Bell Sounds for piano)의 미국 초연이 예정되어 있으니까0517a46431a077af27f854bc4f126175_1689338337_373.jpg
요. 약 20년 전 한국의 피아니스트 김수련의 위촉으로 만들어져서 세계초연된 곡으로 워낙 어려워 그 이후 전곡이 연주된 적이 제가 알기로는 없는 곡인데, 이번에 박계정 교수(Jacksonville State University)의 카네기홀 초청 피아노독주회 때 연주될 것입니다. 원래는 전곡 연주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곡이 워낙 난곡이라 몇 곡을 줄여서 연주하게 됩니다. 저와 제 아내는 기쁨을 함께 나누기위해 당일 음악회에 참석하지요. 이 곡은 그 제목이 말하듯, 종소리화성으로 만들어진 곡입니다. 종소리화성은 제가 비인유학시절 음향학 교수님이셨던 K. A. Hueber 교수님께 배운 새로운 화성의 세계인데요, 그 소리와 예술적 가능성에 매료되어 십여년을 보내면서 쓰게된 일종의 보고서 성격의 곡이지요. 12곡의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거의 성경의 흐름을 따른 제목이라 이 곡 전체는 결국 성경을 종소리의 신비로운 화성을 통해 이야기해주는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초연 실황 듣기: https://youtu.be/9SWIq6gVaQ8 )
종소리로 곡을 쓰는 일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원석을 찾아 그것을 갈고 닦아 보석으로 만드는 작업이라고나 할까요? 이는 너무 복잡한 이론이라 저도 다 이해하지 못하는데, Hueber 교수님은 작곡가이자 수학자라 그것을 해낼 수 있었지요. 저는 그 이후 그 이론을 발전시켜 “종소리화성” 이론서를 만들게 되었는데 감사하게도 오스트리아 정부의 후원을 받아 출판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벌써 20년 전 쯤 이야기지요.  이번 연주회를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또 다른 차원에서 나타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