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로잔대회를 통해 본 로잔 운동에 대한 이해 I
한철호(선교한국 파트너스 상임위원장, 한국로잔중앙위원)
hanchulho@gmail.com 지난 해 10월 로잔2010대회가 열린 후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로잔2010대회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이 대회가 기독교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다. 한국에서도 로잔운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많다. 많은 복음주의권 단체들과 개인이 1974년 로잔대회에서 발표된 로잔언약을 그들의 신앙고백으로 삼고 있다. 문제는 로잔운동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다. 이번 로잔2010대회 후에 나타난 각종 평가나 반응을 볼 때, 그 내용이 편향적이거나 부분적인 것은 로잔운동에 대한 전체적이 이해가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로잔운동은 마치 잘 정리된 기독교 백화점과 같다. 나름대로의 성격과 경향을 가지고 다양한 물건을 잘 전시하고 보여주는 종합 백화점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로잔운동을 보고 어떤 한 측면만을 강조하거나, 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정한 측면이 덜 강조되었다고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은 올바른 평가라고 볼 수 없다. 이번 호에서는 로잔운동을 바로 이해하고 평가 적용하기 위해서 로잔운동의 배경에 대해서 살펴보고, 다음 호에서는 이런 관점에서 2010로잔대회에 대한 평가와 한국적 상황에서의 적용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로잔운동의 배경
로잔운동은 1974년에 스위스 로잔에서 복음주의권 지도자들이 모인 로잔세계복음화대회(Lausanne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로부터 시작되었다. 로잔운동을 바로 이해하려면 1910년 에딘버러선교사대회(Edinburgh World Missionary Conference)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10년에 로잔3차대회가 2010년에 열린 이유는 1910년 에딘버러대회 백주년을 기념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1910년은 서구선교가 개척의 시대를 열면서 개신교가 빠른 속도로 전 세계로 확장되던 시기이다. 1910년의 모임은 ‘세계선교사대회’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전 세계에서 선교하던 서구선교사들이 세계복음화의 과업을 완성하기 위해서 모인 일종의 선교대회였다. 이 대회의 주제는 당시 세계선교동원을 주도하던 학생자원자운동(SVM)의 슬로건인 ‘우리 세대에 세계복음화를 이루자’라는 주제와 동일한 것으로, 학생자원자운동(SVM)의 리더인 40살의 존 모트가 대회의장이 되었다. 이 대회에 참석했던 1,234명 가운데, 오직 19명의 아시아인과 1명의 아프리카 대표를 제외하고는 모두 서양선교사들이었다. 왜냐하면 1910년 당시 세계복음화에 참여하고 있던 교회는 서구 교회 뿐 이었고, 비 서구교회는 선교지이기 때문이다.
1910년 에딘버러 대회 이후 세계선교의 흐름은 당시의 신학적 흐름에 영향을 받게 된다. 그것은 에큐메니칼운동이다. 그 결과 1910년 에딘버러대회 이후 선교의 흐름은 좁은 의미의 해외선교에서부터 넓은 의미의 선교로 바뀌게 된다. 이것은 당시 등장하기 시작하는 개방적 신학과 학생자원자원자운동(SVM)의 영향이기도 하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SVM운동은 해외선교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당시 사회의 다양한 흐름에 대한 기독교적 대응으로 옮겨 갔다. 그 결과 SVM은 젊은이 해외선교동원 운동으로서의 영향력을 상실하고, 1930년 중반에 이르러 그 사역이 종결되고 만다. 이런 흐름 때문에 에딘버러운동은 국제선교사협의회(IMC)와 세계교회협의회(WCC)로 발전하면서, 에큐메니칼운동을 만들어가는 통로가 된다. 그래서 존 모트에 이어서 세 번째로 IMC 총무로 일했던 네슬리 뉴비긴은 IMC와 WCC를 통합하려고 했다. 뉴비긴은 교회의 연합과 선교적 본질과의 연속성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즉 교회 연합체로서 WCC에 대한 뉴비긴의 염려는 ‘선교 부재’였다. 그리고 1961년 WCC 뉴델리 회의에서 IMC와 WCC의 통합이 마침내 이루어졌지만, WCC 진영 내의 선교적 동력은 뉴비긴의 기대와 달리 활성화되지 않았다. 대신 세속화와 인간화 논쟁이 에큐메니컬 진영의 주요 신학적 의제를 형성했다. 호켄다이크(J. C. Hoekendijk)를 중심으로, 교회의 선교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1952년 IMC 윌링겐 회의에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말이 등장하게 된다. 즉 선교는 하나님의 것이고 따라서 사람들은 선교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개념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선교지에서 선교사들은 철수하고, 기독교 선교의 확장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거나 퇴보되기 시작했다.
한편 1960년 당시 다시 태동하기 시작한 복음주의권에서는 WCC 운동이 온전한 복음전파에 대한 강조보다는 교회의 일치와 사회적 관심에 더 집중하고 1910년의 에딘버러선교사대회의 원래 정신을 보존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1960년대를 거치면서 칼 헨리, 빌리그레함 등을 중심으로 복음주의 회복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당시 다시 태동하는 복음주의권이 가진 문제의식은 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들이 철수 하게 되고, 복음의 확장이 중지되었는가의 질문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열린 복음주의자들 중심의 첫 세계적인 모임이 1968년의 베르린세계복음화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복음주의자들은 세계복음화의 회복이 일어나야 한다고 의견을 모우고, 전 세계복음화를 위해, 1910년 전 세계기독교 선교사가 모였던 것처럼 세계복음화를 위한 복음주의자들의 모임을 제안하게 된다. 그 결과 1974년에 스위스 로잔에서 첫 세계복음화를 위한 대회가 열렸고, 일회적 성격으로 모였던 로잔대회는 로잔운동으로 발전하면서 복음주의권의 구심적 역할을 하게 된다.
1974년 로잔 대회의 두 공헌
1974년 로잔대회가 세계적인 관심을 일으킨 것은 두 가지 결과 때문 이었다 . 하나는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이 동일한 가치(논리적으로는 복음전도가 우선된다고 확인했지만)를 가진다는 복음의 총체성적 측면(Whole Gospel)을 회복한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 패러다임의 배경에는 존 스토트목사가 선교의 성경적 패러다임을 마28:19-20절(가서 복음을 전하고 제자 삼으라)에서 보기 보다는 요17:18절(하나님에서 예수님을 보낸 것처럼, 예수님도 우리를 세상으로 보낸다)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을 전파하시고, 가르치시고, 병을 고치시고, 가난한 자들을 도왔던 것처럼 우리도 세상에 가서 예수님처럼 행하는 것이 선교라고 정의 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 근거하여 당시 남미 복음주의학생운동 리더였던, 르레 빠디아와 사무엘 에스코바 등이 발제한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의 균형을 통한 총체적 복음전도에 대한 주장은 복음주의권 교회에 큰 도전을 주었다. 왜냐하면 당시 선교지에서의 선교 실패와 선교사 철수는 서구 선교가 선교지의 상황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만 일방적으로 진행했다는 반성 때문이었다. 인간성의 회복만을 강조하는 자유주의 신학과 맹목적 복음전파만 선교라고 말하는 근본주의 신학 사이에서 방향을 잃고 있었던 복음주의자들에게는 복음 전파의 우선권을 인정하면서도 복음전파와 사회적 책임의 동등한 가치를 인정한 로잔언약이야 말로 어둠속에서 발견한 큰 빛줄기와 같은 것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USCWM의 랄프 원터박사의 “새 마게도냐”라는 제목의 강연이었다. 원터박사는 세계복음화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던 이유가 국가단위의 선교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문화 안에 있는 복음이 다른 문화로 전달되기 위해서는 국가 단위 선교전략으로는 불가능하고, 각 문화를 형성하는 종족단위로 복음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각 문화 단위를 구성하는 종족들을 분류하고, 그 가운데 미전도종족을 찾아내서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는 ‘미전도종족선교’전략을 제시했다. 그 이후 이 주장은 지금까지 선교운동의 핵심적인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다양한 논의들을 뒷받침하는 신앙고백으로 제시된 ‘로잔언약’은 그야말로 복음주의교회에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지난 40년 동안 로잔언약은 복음주의 신학의 근간을 이루어 왔다. 그 후 1989년 마닐라 2차로잔대회가 열리기 전까지 복음주의 진영은 그야말로 신학과 선교전략 발전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각종 회의와 크고 작은 대회가 열려서 복음의 총체성의 구체적의 적용과 의미, 그리고 미전도 종족이라는 관점에서 본 세계복음화의 전략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1989년 마닐라에서 열린 제2차 마닐라로잔대회에는 로잔언약에 근거하여 발전되어 온 복음주의 신학과 선교를 다시 확인하면서, 당시 세계 변화의 핵심적인 경향인 세계화의 문제를 인식하고, 교회적으로는 비서구권 교회의 등장과 카리스마틱운동을 복음주의권이 수용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한 뿌리, 세 갈래
2010년을 맞이하면서 세계교회는 조금 흥분되어 있었다. 1910년 에디버러선교사대회가 100주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 진영마다 100주년을 바라다보는 시각은 달랐다. 2010년의 100주년을 어떻게 기념하고 의미 있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그림을 각자 그리고 있었다. WCC로 대변되는 에큐메니칼 진영은 1910년 대회가 WCC 운동의 뿌리가 되었기 때문에, 2010년 에딘버러 백주년 기념 대회는 전 세계에 있는 모든 교회들이 교파와 종파를 초월하여 함께 모여야 진정한 세계복음화의 장으로 열어갈 수 있다는 교회의 일치라는 관점으로 보았다. 한편 랄프 윈터박사는 1910년 대회가 당시 전 세계에서 사역하고 있던 선교사들의 대회였으므로, 이를 기념하는 백주년 기념 대회는 지금 선교지에서 가장 활발히 사역하는 비서구권 선교사(선교단체리더)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에 로잔운동 측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사역하는 세계복음주의 교회와 선교단체들이 다 함께 모여서 세계 복음화 전반을 논의하는 것이 에덴버러대회 백주년을 기념하는 일이라는 시각을 가졌다. 그 결과 2010년에 이들 세 진영이 각기 다른 선교대회를 개최하게 된다. 그리고 신학자들의 모임(2010 Boston Conference)이 하나 더 추가되면서 전 세계 교회는 네 개의 대회로 에딘버러 백주년을 기념하게 된 것이다.
랄프 원터 박사의 주장을 근거로 제일 먼저 2010년 5월에 열린 토쿄선교전략회의(Tokyo 2010: Global Mission Consultation)는 해외 선교단체의 리더들을 중심으로 모였다. 1910년 대회가 당시 참석자 1234명 모두가 서양 선교사들이었음에 반해서, TOKYO 2010대회는 오늘날 세계선교의 상황을 반영하듯이 참가자의 70% 이상이 비서구 즉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선교지도자들 1,000여명이 참석했다. 한편 이어서 6월 2일 - 6일에 열린 에딘버러 2010 백주년기념 세계 선교사대회(Edinburgh 2010 Centennial World Missionary Conference,
www.edinburgh2010.org)는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각 교파와 기독교 종파를 대표하는 300명의 지도자들만 모이는 작은 모임이었다. 복음주의권 교회들의 동참을 이끌어내려고 했으나, 서구 에큐메니칼 진영이 대회 운영의 주도권을 가지게 되면서, 캐토릭, 동방정교 등 모든 기독교 종파들이 다 교회의 일치 차원에서 모이는 것에 별 흥미를 가지지 못한 복음주의권이 빠지면서 모임이 대폭 축소되었다. 반면 복음주의권 진영을 중심으로 기획된 케이프타운 2010 로잔 3차대회는 4,000명이 넘는 참가자들로 대성황을 이뤘다. 이렇게 각기 다른 세 개의 선교대회로 열린 것은, 모두 1910년 에딘버러대회 백주년을 기념하면서 열렸지만, 그 주도적 세력과 신학적 선교적 배경의 차이로 인해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결국 로잔대회는 복음주의 신학이라는 방향성을 가진 다양한 교회와 단체의 신학과 사역이 소개되고, 논의되고, 발전되는 복음주의교회 사역의 백화점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로잔대회는 어떤 사역의 한 측면을 강조하거나 주장하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복음주의신학의 입장에서 기독교 사역의 모든 것이 모아지고 나눠지는 공간으로 그 역할을 하게 된다. 결국 시간과 공간이 제한을 받는 10일 동안의 로잔대회에서 오늘날 기독교의 변화와 주요 주제를 모두 담아낼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 대회에서 발표되는 내용이 상호 모순되어 보이는 부분도 있게 된다. 그래서 이번 2010로잔대회에서도 대회 기간 내내 각 진영은 자신들의 관점과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과 평가를 했다. 복음전도를 강조하는 측,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측, 젊은이들, 여성 등 모두가 각자 자신들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를 하고 있다. 결국 로잔대회는 다양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 복음주의라는 신학적 관점에 근거해서 모이고, 나누고, 전 세계적인 공감대롤 만들어 가는 장이라는 관점으로 이해해야만 올바른 평가와 적용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