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설교(한영중)

성 경:계 22:11~14 제 목:선택적 구원으로 인한 믿음

0 1,558 2017.02.0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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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계 22:11~14                              제  목:선택적 구원으로 인한 믿음             

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어느 실버타운에  할아버지 한 분이 입주했습니다.  괜찮은 시설이고 또 자식들도 주말이면 오니까 처음에는 지낼만 했는데 몇 달을 지나다보니, 자주 오던 자식들도 잘 오지 않고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시점에 늘 혼자 실버타운 내에 늘 혼자 지내는 할머니 한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할아버지는  한눈에 할머니에게 반했습니다.  그래서 결심을 하고 할머니 곁으로 다가가  서로 외로우니 함께 살자고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프로포즈 였지만 할머니는 즉석에서  Yes라고 대답을 합니다.  당황한건 할아버지 였습니다.  그날밤  할아버지는 너무  기분이 좋아서 밤잠 마져도 설쳤습니다. 다음날 비몽사몽간에 잠에서 깻지만  마치 18세 소년 처럼 설레미며 흥분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잠을 깬 할아버지는 분명 어제 어제 할머니에게 프로포즈를 했는데, 그 할머니가 yes라고 대답을 했는지 no라고 대답을 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할머니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  이보슈  할멈  정말 죄송한데 내가 기억이 없어서 그러는데 어제 내가 프로포즈 했을 때, yes라고 대답을 했는지 no라고 대답을 했는지 다시 한 번만 말해줄수 있겠소 ” . 그러자 할머니는 ‘어머나 ~~!!  이렇게 고마울 수가, 아이구 영감탱이 !!  너무 고마워요’하며 뜻밖에 대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할아버지는 ‘뭐 뭐요 !!  이런 영감탱이가 어디 있어’ 하고 화를 낼 줄 알았는데, 뜻밖에 아주~~ 고마워 하면서 반기니 내심 당황한것은 할아버지 였습니다 .  연이어 할머니가 말을 잇습니다 “ 사실 제가 어제  프로포즈를 받을 때 분명히 Yes라고 대답을 한것은 기억이 나는데  아!  글쎄  누가 내게 프로포즈를 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프로포즈한 할아버지를 생각하려고 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아침 일찍 이렇게 영감님이 그런 말씀을 하니 고맙울 수밖에 없지요  .. 고마워요 영감님 .  참 정신이 없습니다.

 지난주 시청의 모 여직원에게 전화를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직원이 전화한 이유는  목사님!~ 지난번 경주 엑스포 놀러 갔을때 , 사진 찍은것 있잖아요.  그 사진을 보내어 주시면 저희가 동영상 제작 자료로 활용할텐데 , 하면서  전화를 하기전에 먼저  카카오톡으로 문자를 보내었다는 것입니다.
 
 * 카카오톡 - 핸드폰 무료 시스템 중의 하나

  그런데 , 아! 네  핸드폰을 차안에 두고 와서  보지를 못했네요 !! ( 사실 핸드폰은 지금  손에 들고 통화를 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ㅎㅎㅎ ) 참 바쁘게 지나간 1년입니다.  오늘이 2011년도 하고도 12월의 첫 주입니다.  휭~~ 하니 한해가 지나갔습니다.  엊그저께가 2011년도 벽두새벽이었는데 ,  벌써 달력한장 덩그러니 남기고 이한해를 저물어 갑니다. 우리는 매년 이맘때쯤  지나간 한해를 돌아보면서 , 새로운 각오를 다집니다.  핸드폰을 손에 들고도  핸드폰을 찿을 만큼 분주하고 바쁘고  그런가운데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과 사역 그리고 연결된 모든 상황에 충실하며 성실하게 살았던 지난 1년이 마치 주마등 처럼 스칩니다.

  지나간 1년을 돌아 보면 만감이 교차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성경의 가장 마지막 장인 요한 계시록 22장을 살펴보면서 ,  또한  한해를 마무리 하는 이시점에 어떻게 하면  이한해를 잘 마무리 할까 ?  또한 우리 의 남은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 할까 하는 관점에서 말씀을 상고할까 합니다.
오늘 이아침도 주님앞에 힘겹게 한해를 달려오신 성도 여러분들에게 ,  오대양 육대주의 형제자매 여러분들에게 지혜롭고 충성스런 종과 같이 주님앞에 한해를 잘 마무리 하고  인생을 잘 마무리 하여 칭찬듣고 그득한 상급으로  감사와 찬양을 주님께 올리는 축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남은 한해 잘 마무리 합시다” “남은 인생 지극히 큰 상급이 됩시다”

1. 신앙의 양극화
  오늘 본문 11절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이시대를 흔히들 양극화(兩極話) 시대 라고 부릅니다.  경제 논리에 있어 양극화는 빈익빈 부익부 (貧益貧 富益富)를 의미합니다.  가진자는 더 많이 가지고 없는자는 더욱 극빈해 지는 상황을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경제적 논리뿐아니라 ,  모든 분야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학식이 더한 자는 더욱 더 방대한 지식의 터널을 구축합니다.  이 관점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전문화 된다 . 우리 말로 쟁이가 된다. 프로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문학이나 예술 , 기술 , 음악  ,체육 모든 분야가 이러한 양극화의 심화 상태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습니다.  더욱기  신앙의 상황에서도 이러한 영적 양극화의 현상은 첨예(尖銳)합니다.    또한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하게 살고자하는 사람들 , 가치있고 보람된 인생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 ,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 일을 위해 매진하고 헌신하고 희생하고 봉사 , 충성합니다.

 우리가 읽은 오늘 본문의 말씀도 이러한 첨예하고 극심한 양극화 상태의 절정을 말씀으로 잘 나타낸 것입니다.  “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는 것입니다.

  불의를 행하는 자가 불의를 행한다 . 
  더러운자는 그대로 더럽다.
   
  그러나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며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는 관점은  하나님의 선택적 구원과 유기적 관점으로 나뉩니다.  하나님의 선택적 구원이라 함을  “믿음”이라는 전제를 하나님의 선택적 구원적 관점으로 본다면  믿음 즉 구원을 이루시는 주체는 하나님의 전적이 “은혜”로 말미암아 이루어 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행적으로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우리 인생에게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을 주셨기에  구원에 이룰수 있다는 것입니다 .  이 구원은 내가 의지적 선택이나 혹은  나의 선행적 공로로 받는 구원이 아니라 ,  믿어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겨지는 은혜  믿어지는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믿으려고 하는 의지에 구원이 아니라 , 믿어지는 은혜 바로 선택적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는 길목에  깊이 60m 나 되는 홍해가 가로 막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은 그 홍해를 육지처럼 갈라 놓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사실이  수천년 지난 오늘날에게 믿겨진다는 것입니다.  이사실이 믿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  그냥 믿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어지는 은혜의 구원 선택적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구원하시기로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반면에  유기적 관점에서의 구원을 본다면 ,  믿으려 하지만 믿어지닌 않는 것입니다.  아니 !~  어떻게 홍해가 갈라지지 ,  서해안 처럼 조수 간만의 차이가 있으면 있었지 ,  밀물과 썰물이 있어  물이빠지면  육지도 뭍도 드러나고 ,  바다를 육지처럼 건널수 있지 ...  그러나 홍해는  깊이가 60m 라면  물기둥이  양쪽으로 쏟구쳐 있을텐데 ...  아니야!  아니야!  불가능한 일이야 ! 그런일이 있을수 없는 일이야!  믿어려 해도 믿어지지 않는것  유기적 관점에서의 구원이라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 결혼하지 않는 동정녀 마리에게서 탄생했다 .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결혼하지 않고서  태어날 수 있단 말인가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셔서 3일이 지난후에  다시 부활하셨다.  믿어지 않습니다.

  어떻게 3일이 지나면 이미 시체가 부패해서 더 이상 살수 없는데 ,  다시 부활한단 말인가 ?  아마 죽지 않았는데 죽었다고 했던가 ?  시체를 빼돌렸던가 ?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기적 관점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참으로 주님의 심정으로 간절한 권고를 드립니다. 만일 믿겨지지 않거든 ,  주님께 은혜를 구하십시오.  마음밭을 기경할수 있도록  ,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회복되게 해달라고 ....할렐루야!  우리가  선택적 은혜의 구원 관점에서 우리의 구원을 높고 볼때 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한지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자 오늘 본문  11절의 말씀은 선택적 은혜의 구원관점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의 삶과  유기적 관점에서 심판에 노출된  사람의 관점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다함께 다시 한번 11절의 말씀을 읽어봅시다.

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아멘 .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의 삶은 불의를 싫어합니다.  더러운 일을 싫어 합니다.  죄짓는 것이 정말 싫습니다.  죄와 더불어 살지 않으려 합니다.  죄가 무섭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빛으로 나옵니다.  또한 선한 일을 도모하고 선한 사업에 부한 삶을 지향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을 사랑할까 하는  하늘 백성으로써 이땅의 삶을 살아갑니다.세상의 부귀 영화 권세 권력 쾌락을 쫓기보다는 ,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 맡기운 사명을 생명처럼 여기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미 그 마음에 하늘 백성으로써  구원받은 증표로 믿음이라는 생명의 씨앗이 심기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심령에 심기운 생명의 말씀을 통해  믿음을 성장하게 할것입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어가시는 놀라운 계획을 우리가 발견하게 될것이고 ,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찬미하게 될것이며 .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할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유기적 관점에 노출된 사람을 보십시오  계속적으로 불의를 행합니다.  그일이  불법적이고 불의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 손을 놓지 못합니다. 잘못된 일임에도  그 일에 손을 끈치 못합니다.  불법과 결탁하고 세상과 손잡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또한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말은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적 관점의 은혜의 구원을 보면 ,  이미 죄로 말미암아 죄악에 노출된 우리 인생을 보면 , 계속해서 죄짓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미 마귀를 심판했다고 합니다.  마귀는  지옥에 가도록 심판했습니다.  마귀의 종국은 불심판 불지옥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할수 있는 마지막 미션은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은 그 피조물인 사람들을 죄짓도록 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해서 ,  그들을 지옥에 데리고 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의 선택적 은혜의 구원의 속한 사람들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암울한 상황에 노출되지만  ,  돌이킨다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돌이키고 죄지은 것을 후회하고 나아가 다시는 죄 짓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죄가 싫어요 죄는 사람의 영혼을 망치며 영원한 불심판 불지옥으로 가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이키려 합니다.   

  오늘 본문 14절을 보십시오 .

 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아멘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 보니  “생명나무”에 나아가기 위해  두루마기를 빨아야 한다고 했습지다.    여러분 !  요한계시록 22 장에 나오는 생명나무는  창세기 에덴동산에 있었던 생명나무를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약속(언약)을 깨트린 이후 ,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두루도는 화염검으로 천사들이 지키도록 했습니다.  생명나무의 역할은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의 아담과하와가 죄지은 상태로 영원히 살지 않도록  에덴동산에서 내 보내신 것입니다.  죄지은 상태에서 생명나무 실과를 먹으면 영원히 죄지은 상태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든 인생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  생명나무의 나아가기 위해 ,  두루마기를 빨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르마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 우리 인생을 위해 보혈을 흘려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는 정결케 되고 , 새롭게 되고 , 생명나무에 나아갈수 있는 권세가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복음 기자는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생명나무로 나아갈수 있는 권세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은혜를 덧입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의 유일한 구원의 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갈자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시한번 구주 예수님의  구원에 은혜를 기억하며 , 남은 이한해 남은 우리인생 감사하며 , 거룩하며 주어진 사명에 충성하며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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