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설교(한영중)

제 목:하나님께 속한 사랑

0 2,001 2017.02.06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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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요일4:7~12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우리 주변에 스리스도인 으로써 큰 복을 받는 사람들을 여기저기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 중 한사람이  고려신학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한 절친 목사입니다.  그런데 그 친구 목사님이 금번 8월 15일 큰 딸 결혼식을 하는데 자신의 집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좋은 가문과 가정에서 성장한 사위를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습니까 ?  사돈 될 분은 경기도 평택의 병원장이고 그 부인도 서울 강남에 병원장이고 , 또 두딸이 있는데 딸들도 병원의사이고 사위 두사람도 의사입니다.

  그리고 사위도 서울대학원을 졸업해서 내년도에는 미국으로 유학을 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또한 그 할아버지는 경남 진해에서 유지로 사셨는데 그 유명세가 얼마나 높은지 ,  할아버지 장례식에 화환들이 들어왔는데 , 장차관급이 아니면  장례식장 안에 들어올수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집안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습니까 ?  절친 목사님이 이렇게 좋은 사위와 가문을 만날 수 있었던  원인을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정말 교회를 사랑하는 목사님이라는 것입니다.

  절친 목사님이 현재 부임한 교회는 지난 17년전  위임을 받고 사역을 시작했는데 , 처음 교회 상황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교회가 사분오열(四分五裂)되어  교인끼리 서로 다투고 , 목회자가 부임하면 2년을 넘기기 힘들었고 교회가 성장하기는 커녕  새로운 신자가 오면 , 오히려 상처가되고  아픔이 되어  교회가 날로 어려워 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절친 목사님이 교회를 부임하고난후 교회가 점진적으로 안정이 되고  그리고 꾸준하게 성장이 되고 교인들이 화합하게 되고 할렐루야!!    친구 목사님은 교회를 부임하고 난후 , 1년이 지난 정책 당회를 하는데  , 매년 정책 당회는 재정에 관한 예산 계획을 합니다.  그때 목회자 사례비도 책정을 합니다.  목회자나 성도나 셀러리맨 같은 경우는 물가 상승대비 사례비를 책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입니다.

  그런데 정책당회때  목회자의 사례비 건은  적잖케 민감한 사안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회에 쟁정이 되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친구 목사님은  어려운 교회를 부임하고 난 이후 첫 정책당회에 참석해 먼저  당회원들에게  목회자 사례비에 관련해 말문을 열었습니다.  모두들 신경이 곤두서있는 시점에  목사님이 먼저 사례비에 대해 언급하겠다고하니  눈이 휘둥그레졌고 또한 혹시 무리한 요구를 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도 내심 앞서는 분들이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당회원들에게 내년도  목회자 사례비는 반드시 동결할것을 요청하게됩니다.  교회가 어렵고 힘든데 , 목회자 사례비를 운운하고 올리는 것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볼때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입니다.  생활비 걱정을 하지 않아야  될 이유는  사모님이 학교 일선교사로 일하고 있으니 , 생활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사모님이 일선 교사로 활동 할수 있었던 이유는 전임자 목사님의 사모님이 교회에 문제의  화두가 되었던 적이 몇 번인가 있었고 그문제 때문에 교인들간의 마찰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신임 목회자를 청빙하는 조건중에 한가지는 사모님이 활동을 하지 않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로 사모님은  일선에  일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하간에  목사님은  교회를 생각하면서 ,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를 세워 나가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 교회를 세우는 일중에 한가지가 자신의 사례비를  동결하면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목사님은 교회를 세워나가기를 희망했습니다.  복을 받지 못하는 분들의 공통점을 보면  교회에서 늘 문제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늘 교인들과 충돌을 하고  시기하고 결국 교인들이 교회에 오래 붙어 있지 못하게 하는 경우들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복을 받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축복해주시는 축복의 통로로 교회를 세워 놓았고  교회를 통해서 축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면서 정말 잊지 말아야 할것은 , 어떤 경우라도  교인들간에 다툼을 일으켜서는 않된 다는 것입니다.  만약 다툼이 된다면 ,  그 즉시로  화해하고 양보하고  손을 내밀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 받는 비결입니다.

  이 예화는 비단  절친목사님 한분 뿐 아니라 ,  절친 목사님의 사돈될 장로님도 그런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사돈될 장로님 가정은 서울의 모교회를 개척하고 설립할 때 설립멤버 였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사랑으로 섬기면서 , 성실하게 봉사해왔는데 교회 크고 작은 다반사의 일이라면 열일을 젖혀 두고서 충성하고 봉사하고 헌신하는 분이었습니다.
  심지어 목회자가 심각한 범죄를 해서  성도들에게 알려질 경우 , 교회가 혼란을 초래할수 있는 상황에서 그 사실을 들추어 내지 않고 , 잘 덮어서  자연스럽게 목회자가 사역지 이동을 하고 , 교회는 안정적으로 갈수 있도록 한 장로님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복을 받기로  택함을 입은 자입니다.  그래서 민수기 기자는 "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수 없도다 " 라고 언급을 했는데    그 축복의 명령이라는 것은 결국 무엇을 말할까요 ?  하나님의 관심은 교회입니다.  교회를 구약의 개념으로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시편 11:4
에는  "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  교회를 중심으로 생활해야 합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모여서 지체가 되고 ,  그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리는 곳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 오시는 분들에게  적응을 잘할수 있도록 배려하고 , 힘이 되어주고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께서  목회자에게 맡겨 주었습니다.  이 말씀을 잘 이해하면서 들어야 오해가 생기지 않습니다.  요한 계시록에 보면 일곱교회가  있고 그 교회를 일곱 사자에게 맡겨주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각 교회마다 목회자가 있고 그 목회자에게 교회를 맡겨주었습니다.  목회자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  교회에 들어온 성도들을 진리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슴대로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말씀으로 그들을 양육하고  생활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지도하고 살피는 것입니다.

  만일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가 목회자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문제가 있고 , 하나님의 축복을 발로 차 버리는 것과 다를바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6절은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고 했습니다.  목회자를 존경하고 따르고 그 가르치는 바를 그대로 실천하며 살아갈 때 , 복된 성도의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목회자의 말을 듣고  성경을 통해 삶의  가르침을 받을때 ,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로써 축복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  제 사무실에 보면 우리 교회당과 같은 나무를 한그루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를 누가 제작 했는가 하면 저와 가브리엘 형제 그리고  수갓드 ,    형제가 제작을 했습니다.

  여러분도  동일하게 느꼈지만 , 지난주간은  우리나라 기상 관측사상 가장 더운 한주가 이었습니다.  특별히 31일 토요일은  그 더위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더웠고  티브이 불쾌지수 온도가  최고조 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  그 형제들에게 , 나무를  사무실에 설치해야하는 이유에 대해서 차근 차근 설명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다른 교회에 비해  외국인 근로자들과 결혼이민자  그리고 어려운 기관과 센터를 위해 섬기는 교회라는 사실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곳에 오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본인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고  또한 도움을 받기 위해서 온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도움을 받기 위해서 방문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곳에 오는 그들에게 환경적으로  좋은 상태를 만들어 준다면 그들에게는 한결더 평화로운 마음이 생길것이다 라고 언급을 했고 , 이일을 함께 할수 있겠느냐  내가 혼자하기에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데 , 지금  현재 쉼터에 머물고 있으니까 ? 오히려  교회를 섬길수 있는 기회이며 이일은 하나님앞에 축복된 기회가 되지 않겠느냐 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들은  흔쾌히 동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일을 함께 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쉽지 않는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동의할수 있었던 이유는  이곳 교회 쉼터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고 ,  그들도 그 사랑을  갚을수 있는 기회가 부여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은  그말에 동의하고  또한 충분한 설명을 듣고  교회에 나무 설치하는 일을 할수 잇었던 것은 결국 자신의 결정의 몫이 된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축복되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렇게 설명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동참하지 않았다면  축복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화로 언급한 목사님과 장로님의 경우를 오늘 말씀과 연계해서  생각해봅시다.  하나님의 관심은 어디에 있을까  하나님의 관심은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교회를 통해 ,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를 통해서 , 하나님께서 축복을 하시는데  그 목사님 장로님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7절과 8절을 한번 보십시오. 다함께 읽습니다.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목사님과 장로님이 그렇게 축복을 받은 이유는 , 교회를 세웠고  그 교회    를 세운 원동력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보통 교회에 나오는 분들 보면  처음부터  사업이 잘되고 일이 형통하고 몸이 건강하고 해서 나오는 분들도 있지만 의외로 문제가 많고 어려움이 많아서 교회 나오는 분들도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 그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나오는 사람들은  당장 문제 해결을 위해 교회 나온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사람들의 목표는 문제 해결입니다.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  교회에 나옵니다.  그런데 그 문제는 결국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는 나오는것 이상으로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복음서에도 보면  당시 예수님께  나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은 어려운 문제를 통해  구원에 이르는 그런 축복의 통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왔지만  , 그 어려운 문제를 해결 받는 과정이 진행 되는 동안 그들은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만났을까요 ?  그들은 문제 해결을 의해 예수님께  나왔지만  그 문제를 해결 받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만난것 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하나님을 비춰졌고 , 그 사랑을 받고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 11절 12절 말씀을 보시시오.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아멘.
 
 사람들은 하나님을 직접 눈으로 보고 ,만나고 싶어합니다.  이것은  크리스쳔이든 타종교인이든  모두 동일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사람의 눈으로 볼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존재하는  이마음 " 하나님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 "  이 마음을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모르시고 계실까요?  만일 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모르신다고 딱 잡아떼기에는  하나님의  속성이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만나기 희망하는 마음을 알고 계신다 라고 결론 짓는것이  맞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아신 하나님께서  이땅에 육체를 입고 탄생하신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여러 가지 목적들이 복음서와 다른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데 , 그 가운데 한가지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사랑이시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돌보고 보살피고 ,  힘없고 , 병약한 자들을 치료해 주시고 , 또한 배고픈자에게는 먹을것을  옥에 갖힌 자를 돌보는등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가를  직접 몸으로 실천하시면서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사도들이 제자들과  또 그들의 가르침을 받는 속사도들 그리고  시대와 지역과 국가를 넘어서 여기까지 오게 된것입니다.  만일 오늘 여러분들에게 하니님이 어디에 계십니까 ?  라고 질문을 하게된다면 여러분들은 무엇이라고  대답할수 있겠습니까 ? 
 
12절을 다시한번 읽어봅시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아멘
 하나님을 본사림이 없지만 ,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친히  사랑의 실천을 행함으로 모본을 보여주신것 처럼 우리도  예수님께서 실천하신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면 하나님은 찿아낼수 있고 볼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11절의 말씀은 좀더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

  아멘

  중반절에는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  영어 성경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11. Dear friends, since God so loved us, we also ought to love one another.  아멘

 
we also ought to love one another.  우리 또한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마땅하다는 단어로  ought  to 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단어는  ① ┅해야만 하다, ┅하는 것이 당연하다.
        ② ┅하기로 되어 있다,
        ③ (틀림없이) ┅할 것이다,
        ④ ┅임에 틀림없다.  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린다면 " ought to" 는  의무적 관념이 매우 강한 단어입니다.  여러분 의무적 관념이 매우 강하다라고 하니까  한편으로 부담을 느끼는 분들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의무적 관념에 대한  성숙한 이해는 .

  존재에 대한 올바른 가치 정립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  성도들이  사랑함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의무적 관념이라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창조의 목적 가운데 한가지가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볼수 없는 영적 존재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볼수 없는 존재 였나요 . 아닙니다  창조이후 에덴동산에서 살때는  하나님을 볼수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함께 하나님과 더불어 에덴동산을 더불어 걸었다고 했고 .얼굴과 얼굴을 맞주보았던 상황입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 오고난 이 후 아담은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 하나님의 깊은 심중은 단지 아담이 죄를 범했다고 해서 그를 에덴동산밖으로 쫓아내는것 이상으로 . 그를 통해 눈으로 볼수 없는 하나님을 , 영이신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있는  그 기회를 인생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아담에 죄를 범했지만 ,  " 정녕 혹은 반드시 죽으리라 " 고 했지만 ,  영원히 살 수 있는 영생에 대한 기회를 상실하지 않게 하시려고 에덴동산에서 내보낸것 입니다.  "  선악과를 먹은채 영생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죄지은 상태에서 영원히 살게되니까 "    에덴동산에서 두지 않으시고 , 영생하도록  살수 있도록  그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에덴동산에서  내보낸 것입니다.  아담은 그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보여 줍니까 ?  그것은  여러분들이 사랑의 삶의 실천을 통해 하나님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사랑을 실천하면 그것은 , 하나님께서 사랑이시라는 것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에 대한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한다는 의미는  그 하나님의 창조행위를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귀한 깨달음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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