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설교(한영중)

성 경: 히12:1~3 제 목 :인내로서 경주

0 1,466 2017.02.03 10:19
성  경: 히12:1~3                                    2011년 10월 30일
제  목: 인내로써 경주                                주일낮 예배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1 Therefore, since we are surrounded by such a great cloud of witnesses, let us throw off everything that hinders and the sin that so easily entangles, and let us run with perseverance the race marked out for us.
  2 Let us fix our eyes on Jesus, the author and perfecter of our faith, who for the joy set before him endured the cross, scorning its shame, and sat down at the right hand of the throne of God.
  3 Consider him who endured such opposition from sinful men, so that you will not grow weary and lose heart.

 
  할렐루야!

 어떤 사람은 인생을 마라톤에 경주에 비유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마라톤과 같은 여정을 가는 인생길입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인생은 기회이며 찬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은 모든 상황과 모든 여건을 극복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특별한 인생의 기회 ,인생의 찬스인 것입니다.

 그 찬스와 기회는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 어떤 상황을 막론하고 주어진 것입니다. 모든 인생에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된 모든 피조물에게 부여된 것입니다.  방금 우리가 보았던  유트브의 폴포츠는 늘 왕따를 당했습니다.  얼마나 고통이 동반 되었겠습니까 ?  얼마나 그 슬픔과 아픔이 컸겠습니까 ? 

  그러나 그는 고통이 동반되고 아픔이 다가오고 왕따를 당할 때 마다 ‘노래’를 불렀다고 했습니다.  그에게 포기할수 없는 한가지 꿈이 있다면,  그에게 포기할수 없는 한가지 희망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노래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인생을 노래에 비유합니다. 나는 평생 노래하고 싶다!!. 나는  전문적인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것이 그의 꿈이자 희망이었고  그꿈과 희망의  내면에는 인생의 기회가 챤스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생업 때문에 핸드폰 세일즈맨을 하면서도 ‘자신의 꿈을 ,  노래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의 꿈은 실현되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가수 , 이젠 그의 이름 석자만 들어도 그가 누구인가 ?  알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옆사람에게 권면하시고 위로해 주십시오.  “당신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 집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인생여정 걷다 보면 때로는 낙심도 하고 절망도 합니다. 특별히 믿음으로 살려고 발버퉁치다 보면 고통도 수반되고 , 어려움이 닥칠때 ,낙심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절망적인 어려움에 처하게 될 때 , 성경은 “  인내로써 경주하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1절 후반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1 Therefore, since we are surrounded by such a great cloud of witnesses, let us throw off everything that hinders and the sin that so easily entangles, and let us run with perseverance the race marked out for us.


  인내로써 믿음의 경주를 하라는 것입니다.    인내하는 것은 믿음의 좋은 열매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신앙생활 하면서 특별히 신앙생활의 열매에 대한 목표를 설정할 때  사랑의 열매 , 화평의 열매 , 섬김의 열매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사랑으로 섬길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하나님 저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하나님 제가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해 주옵소서!!

  그렇습니다. 사랑으로 섬기는것 !!  사랑의 사람이 되는것!!  참 좋은 신앙의 목표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 5:22~23 절을 보면 성령의 열매가 기록되어 있는데  좀더 다른 각도에서 한번 조명을 해봅시다.  우리  다함께 갈5:22~23절의 말씀을 읽어봅시다.

갈5: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2 But the fruit of the Spirit is love, joy, peace, patience,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23 gentleness and self-control. Against such things there is no law.

      。
 
  아멘  성령의 열매는 사랑 , 희락 , 화평 , 오래참음 , 자비 , 양선 , 충성 , 온유, 절제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성령의 열매는 사랑만큼 , 화평이 중요합니다. 또한 사랑만큼  오래참음이 중요합니다.    이말은 사랑이나 오래참음이나 동일하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열매나  오래 참음의 열매나 동일한 선상에서 보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사랑한다면  오래 참을 수 있습니다.  만일 사랑한다면  충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기를 원하는 여러분들에게 오래참음의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인내로써 경주하는 신앙의 경주 , 참 귀한 열매이며 축복이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인내라는 성령의 열매” 어디다 비유할까?  라고 생각을 하다가 “인내”는 권투선수가 권투시합을 할때로 말하자면  ‘권투선수의 멧집’을 기르는 일이다 라고생각했습니다.  권투선수가 시합을 하기 위해 여러 가지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가운데  상대방의 주먹을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부득이하게 상대방 주먹을 맞으며 , 시합을 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주먹을 피해갈수 없다면 , 그 주먹에 대한 내성을 길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멧집입니다.  어지간히 맞아도 전혀 요동하지 않는 멧집 내성 ...... 멧집이 강할수록  상대선수는 힘이 빠지고 종국에  승리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에게 신앙의 멧집인 “인내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여행객들의 특성은 ,풍광이 좋은곳을 찿습니다 , 기암괴석이 특출한 곳을 탐험합니다.  형형색색의 말로 형언할수 없는  아름다움과 천혜의 자연경관을 찿아 여행합니다.    국내 여행객이 감소되고 , 해외여행객이 급증하는 이유중 한가지가 무엇일까 ?  더 이상 국내에는 볼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해외 여행지에 대한  설레임 때문입니다.  압축해서 말씀을 드리면 , 풍광이 좋은 기기묘묘한 기암괴석과  천혜의 자연경관을 목격했다면  그다음 여행지는 그보다 더 아름답고 ,  좋은 관광지를 찿는 것이 정석입니다. 

 오늘 인내로써 믿음의 경주를 하라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인내는 사랑과 더불어 동일한 성령의 열매라고 할때  그 인내의 한계는 어디일까 ?  어디까지가 목표치 일까 ?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목표치 설정에 중요한 한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목표 설정에 따라 선수의 기량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군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육군 현역병 훈련과 하사관 훈련 ,그리고 위관 장교들의 훈련기간은 다릅니다 또한 훈련의 강도도 다릅니다.

  현역병 가운데서도 일반병과  특수부대요원  수색요원  UDT 요원 , 대공 침투 요원등 모든 사병의 훈련 목표치가 다릅니다.  어떤 훈련의 목표치를 설정하느냐에 따라 군사훈련의 강도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입국해 근로하는 형제들을 보면 , 때로는 안타까울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조금만 힘들어도 일을 포기하고 직장을 옮기고 , 또한 직장을 이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충분히 이해합니다.  겨울이 없는 동남아에서 입국한 형제들 경우 첫 번째 겨울나가기 참 힘이 듭니다. 

  또한  힘든일을 해보지 않은 형제들이 강도 높은 고강도의 작업을 하자면 힘이 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힘든일도 참고 견디면  적응이 되고  그리고 적응을 넘어선 기량을 선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성공에 대한 분명하고 확실한 목표는 그 어떤 어려움도 능히 이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의 인내의 목표치는 무엇일까요 ?  인내로써 믿음의 경주를 하라고 했는데  그 목표치가 무엇입니까 ?  오늘 본문 2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2 Let us fix our eyes on Jesus, the author and perfecter of our faith, who for the joy set before him endured the cross, scorning its shame, and sat down at the right hand of the throne of God.


 
  아멘.  믿음의 목표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신앙의 목표치입니다.    여러분 !  구약성경은 완벽한 완전한 , 완전무결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완벽한 말씀입니다.  그 어느 곳에서도 흠을 찿을수가 없고 , 모순을 찿을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완전무결한 성경말씀이  불완전한 인간에게 주어졌을때  , 괴리현상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왜 아담과 하와를 죄짓도록 허용하셨을까 ?  만일 아담과 하와가 죄짓지 않았다면  오늘 우리도 죄와 상관없이 살수 있지 않을까 ?  성경은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 가정을 어떻게 섬겨야 할지 , 이웃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제시했지만  인간의 죄성은  하나님의 완전무결한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그로 말미암아 괴리현상을 도출해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한계를 아셨습니다.  그래서  이땅에 하나님께서 직접 , 친히 오셔서 성경말씀을 어떻게 실천하면서 사는지에 대한 삶에 대한 모델로써 직접 보여 주신 것입니다 .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예수님은 성육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삶에 대한 분명하고 명쾌한 기준들을  표준들을 주신것입니다. 제자들과 더불어 직접 동고동락하면서 살았습니다. 

  오늘 인내로써 믿음의 삶을 사는 기준은 표준은  , 바로 예수님의 삶을 통해 인내의 목표치를 정하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하다가 낙심과 절망이 밀려올때  우리는 절망하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 본다는 것을 3절에서는 예수님을 생각한다는 의미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서울 모대학에서 정년 은퇴한 여교수가 몸이 불편한 노모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여교수는 평소에도 사회복지 기관이나  몸이 불편한 분들을 위해 가정가정 방문  봉사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하는 일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한 나머지 그 흔한 기념사진 한 장 찍어 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교수가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를 지나는 차량에 치여 숨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죽음에는 참 안타까운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그날도 몸이 불편한 노모를 모시고 외출을 하던중 갑자기 돌진하는 승용차 한 대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 승용차는 아파트 내부도로를 쏟살같이 ,달리면서  사람들을 위협했고 ,급기야 도로를 건너고 있던  목발을 짚은 할아버지를 치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순간  여교수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았던  생활이 몸에 밴지라 ,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 힘껏 달려가 순간적으로 목발짚은 노인은 길밖으로 힘껏 밀쳐 내었습니다.  순간 목발짚은 노인은 인도 한켠에 밀려나있었고 , 놀란  차량은 오히려  여교수와  늙은 노모를 덮쳤버리게 된것입니다. 이사고로  여교수와 노모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게 되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고난 현장을 인터뷰 하던 기자가  목발짚은 노인에게 어떻 상황이 전개되었느냐고 뭍자  노인은  얼떨떨 헤하면서  순간적으로 자신을  도로 한가운데서 밀쳐내고  졸지에 여교수는 자신을 살리려다  비명횡사 했다고 말문을 잊지 못하며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아마 목발 짚은 노인은 죽음의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준 ,  또한 그 위기 때문에 생명을 잃어버린  교수를 결단코 잊을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는 평생  기억에 ,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그 여교수를 잊지 못할것입니다.  매순간 순간 마다 여교수를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이해를 하시면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 우리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온 몸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롬마서 5:8절입니다.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8 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for us in this: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아멘

  오늘 성도들이  인내로써 믿음을 경주하다 , 실망감이 밀려올때 , 결단코 낙심치 말아야 될것은  우리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생은 달리는 경주 마라톤과 같습니다.  마라톤의 기회를 우리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았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 인내로  경주해야 합니다. 참고 경주해야 합니다.  오래 참음으로 경주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경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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