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설교(한영중)

하나님의 섭리 창40:13

0 1,517 2017.02.03 11:39
성  경:창 40:13~!5


    믿음이 좋은 집사님 한분이 주일 아침 일찍 집을 출발합니다. 이유인즉 , 주일학교 학생들을 위한 차량봉사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주일학교 반이 부흥되고 학생이 늘어남에 따라 방문할 곳이 점점 늘어나게 되었고 , 시간도 많이 소진되었습니다.    믿음 좋은 집사님은 이골목 저골목 이동네 저동네를 쏟살같이 달리며 주일학교 학생들을 교회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예배가 마치자 마자 지난주 전도한  이웃집 부부를 교회로 모시고 오기 위해 집 근처로 달려갔습니다.

  아직 교회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이웃 부부는 교회갈 채비는 커녕 , 이핑계 저핑계로  시간을 소비합니다.  그러나 믿음 좋은 집사님은 인상한번 쓰지 않고 , 한영혼이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 세면을 시키고 옷을 입히고 겨우 차에 태웠습니다.  혹여  교회 처음온 지라 ,적응되지 않은 일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 처음 교회가면 이런 저런 일이 있노라고 자세하고 친절하게 안내합니다.  무사히 예배가 마치고 , 교회식당에서 전도한 부부를 모시고 식사를 하고  다시 집으로 무사히 태워 주었습니다.

  오후시간은  기관별 , 부서별 모임을 마치기가 무섭게 오후 예배를 드리고 , 오늘 교회에 나오지 못한 주일학교 학생을 심방했습니다.  그러나  아프다는 학생은 오간데 없고 집은 텅 비어있었습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리저리 추적해보니 친구들과 함께 피시방에서 열심히 게임을 하며  아프다는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허탈감이 밀려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학생에게 다음주에 꼭 만날것을 약속하며 , 인근 분식집에서 함께 떡뽁이며  오뎅 김밥등을 맛있게 먹고  집으로 데러다 주었습니다.  이미 시간은 저녁 11시간 넘어 12시 가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종일 달리다 보니 기름 게이지에 빨강 불이 들어옵니다.

기름이 다되었다는 것이죠 .  아침 일찍 출근을 해야하니 , 아침일찍  주유소 문을 오픈 하는 곳이 없으니 저녁에 기름을 넣어 두어야 겠다고 이곳 저곳 다녔습니다. 그러나 이미 자정이 가까운 지라 인근의 주유소는 모두 문을 닫고  , 괜히 있던 기름마져  거의 바닥에 이르게 되었고 , 이로인해 불안감만 더앴습니다. 이젠 한걸음만 더 움직이면 자동차가 저절로 멈출 지경입니다.  믿음 좋은 집사님은  어떻게 할 수 없어 자동차를 집앞 담벼락에 주차를 했습니다.  그리고 아침 일찍 주유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하루종일 교회를 위해 , 전도를 위해 열심히 달렸는데 정작 자신은 돌보지 못함에 속이 상했습니다.  그러나 집사님은 뭐 어떻게 되겠지 ..... 하며  집으로 갔습니다. 

  다음날 아침 집사님은 평소보다 일찍 서둘러  출근 준비를 했고 문밖으로 나왔습니다.  어라!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  집앞 담벼락에 세워둔 자동차가 사라진 것입니다.  이곳저곳  가까운 동네를 찿았지만 , 자동차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입니다.  할 수 없어 , 경찰서에 신고를 했고 , 신고를 받은 경찰로부터 10여분 후에 전화가 왔습니다.  그 차량은  집에서 5km 정도 떨어진 도로 가에 내 팽캐처 있는 것입니다.  영문을 모르는 집사님은  길가에 설치된 CCTV 를 경찰과 함께 판독해 본 결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차량을 운행해 가다가  차량을 발로 걷어차고 , 나아가 흥분을 하다가 힛긋힐긋 쳐다보면서 줄행랑을 쳐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자동차 절도범 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 그 절도범이  믿음 좋은 집사님의 차를 몰고 도주를 하다 ,그만  기름이 바닥이 나 자동차가 멈춰 선것입니다.  그래서 흥분을 해서 차량을 발로 차고 도망쳐 버린 것입니다.    믿음좋은 집사님은 그 CCTV를 보고 , 그 자리에 무릎을 꿇어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일 온종일  학생들을 싣어 나르고 , 전도한 부부를 싣어나르고 , 심방도 하고 열심히 쫓아 다녔지만  정작 자신을 돌보지 못함에 속이 상해 했던  그 상황이 못내 하나님께 죄송했던 것입니다. 

  만일  주일에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차에 기름도 적당하게 채워놓고 , 다음날 출근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  믿음좋은 집사님은 그순간 하나님의 섭리가 참 놀랍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작은 소리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죄송해요!!  그리고 하나님 감사해요 !! 라고 말입니다.

  할렐루야!
 
    흔히 오늘 이 시대를 가리켜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어느 미래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확실하다는 사실 외에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다.” 말장난을 하는 것 같지만 100%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불확실한 게 비단 이 시대뿐이겠습니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만사 인생만사가 다 불확실합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5분 뒤의 일도 정확히 모릅니다.  인간이 내 인생 내 마음대로 산다고 큰 소리 치지만  ,실제로는 자기 맘대로 되는 게 거의 없습니다. 태어나는 것도,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자기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럼 과연 세상만사 인생만사는 누구 마음대로 되는 걸까요?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주만물과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창조하고 나서 피조물을 그냥 방치하지 않고, 절대주권(絶對主權, Sovereignty of God)으로 간섭하십니다.    우리 육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시며 모든 것을 움직이십니다.  마치 큰 기계가 전력으로 움직이는 것과 같습니다. 전기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밀하고 큰 기계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으로 우주만물과 인생만사를 움직이십니다.  미국에 박사학위 공부를 하러 갔을때  미국 남부 잭슨에서 디트로이트로 경비행기로 3시간 정도 하늘을 날아 갔습니다.  그리고  디트로이트 공항에서  일본 동경 시부야 공항까지  10시간 만에 가야 하는데  디트로이트 공항에서 2시간 정도 연착을 해서 늦게 출발을 했습니다.

 보통 시속800Km로 날아가는 비행기가 속도를 내어 시속 1,200 Km 날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 KTX 열차의 최고속도가 시속 300 Km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마하 1,2 이니까 굉장히 빠른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는  지난 1997년 제작한 Thrust Super Sonic Car 인데 이 자동차는  자동차에  비행기 엔진을 장착하고  시속 1,228Km로 달렸습니다.  이속도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15분이면 도착합니다.  놀라운 속도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세상에서 제일 빠른 전투기는  SR-71 이라는  블랙버드기입니다.  이 전투기는  그 속도가 시속 3,840Km입니다 . 서울에서 부산까지 5 분이면 도착합니다.  비행기가 이륙하면 곧바로  부산에 도착합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세계 최고의 음속을 가진 전투기를 타 보셨습니까 ?  아니라고요 !~!  저는 이 블랙버스 세계에서 최고의 음속을 가진 마하 3.3 의 SR-71 블랙버드와 감히 비교할수 없는 속도를 가진 엄청난 비행기를 타 보았습니다.

  제가 소개하는 이것은 시속 무려 10만 Km로  달리는 비행기입니다. 과연 이비행기가 무엇이냐고요 ,  그리고 어떤 비행기냐고요 , ... 놀라운 것은 이비행기는 저뿐아니라 여러분도 이미 타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타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구는 태양을 주위를 힘차게 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속도가 무려 107,160km 나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 최고 음속의 블레버드 전투기의 3개에 달하는 비행속도로 지금도 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혀 멀미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지구라는 비행기를 타고 현재 비행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하나님의 역사(役事)즉, 섭리(攝理, Providence of God)라고 부릅니다.  좀더 ‘섭리’라는 것을 자세히 설명 드리면 “하나님께서 우주의 만물과 인류의역사, 개인의 인생을 보존하고 통치하시는 모든  행위이다.”고 볼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성경을 제시합니다 .
삼상2:6~7 “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잠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시127:1~2 “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 ”
  하나님은 이렇게 섭리하시는데, 그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일까요?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그리고 선한 결과입니다. 

롬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이세상은  하나님의 섭리 즉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원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이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이 내마음 내뜻대로 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 즉 계획에 의해 일점일획도 변함없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인생여정은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 인생이 펼쳐지고 이루어지고 성취된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인생이란 ?

  그렇다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인생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  여러분, 요셉이 만난 사람들은 누구 누구였습니까? 부모형제, 노예상인, 보디발과 그의 아내, 간수장, 감방 동료, 바로 왕 ... 이들과의 만남으로 요셉의 인생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에 보면 누가 나옵니까? 요셉이 보디발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혔을 때 감방 동료 두 사람,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입니다.  이 두 사람은 얼른 듣기에 별 게 아닌 것 같지만 당시에는 고위관리입니다.  바로 왕의 측근으로 음식을 담당하고 왕의 건강을 체크하는 직책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대통령 수석 비서관에 해당됩니다.  평소 신임이 두터웠을 텐데 무슨 연유인지 미움을 받아 감옥에 갇히게 된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 두 사람이 감옥에 있었는데,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왕의 심기가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좌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이 꿈을 꿉니다. 그 뜻을 몰라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 사연을 들은 요셉이 꿈을 해석해 줍니다.  술 맡은 관원장의 꿈과 그 해석이 나옵니다. 포도나무 세 가지가 있는데 거기 달린 포도송이를 짜서 즙을 만들어 바로의 잔에 드리는 꿈입니다. 요셉은 사흘 후 복직되는 꿈이라고 해석해 주었는데, 정말 그대로 됩니다.  떡 맡은 관원장의 꿈과 그 해석이 나옵니다. 흰 떡 세 광주리가 있는데 광주리에 담긴 음식을 새가 쪼아 먹는 꿈입니다. 요셉은 사흘 후에 사형 당하는 꿈이라고 해석해 주었는데, 정말 그대로 됩니다.

  그런데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한 후 요셉을 도와주리라 기대했건만, 술맡은 관원장은 새까맣게 그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요셉을 생각나게 하셨고  결국 그 사람이 바로 왕에게 요셉을 소개하게 됩니다.    결국 바로와의 만남으로 인해 요셉이 일약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감옥에서 만난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의 인생에 그렇게 큰 역할을 하게 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만남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띠라 우리 인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섭리를 확신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 마다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실일을 뭍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기전 하나님 그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무엇입니까 ?  라는 기도는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집에 심방을 갈때도 하나님께서 그 집에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나타내실지에 대한 기대 때문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섭리를 받아들이고 그리고 그 섭리를 믿고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섭리 라는 것이 행여 기복(祈福)신앙으로 이어져서는 않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섭리를 , 오해하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보다 사람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보다 환경이나 여건 혹은 조건을 의지하는 경향으로 빗나갈수 있다는 것을 유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순경(順境)에 처해도 , 역경(逆境)에 처해도 ,  가난할때도 배부를때도  건강할때도  병약할때도 , 부요할때도 가난할때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입니다.

  요셉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본문이 주어진 현장이 어디 입니까 ? 요셉은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 감옥에 갖혔습니다.  요셉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요셉이 낙심하고 좌절하고 절망합니까 ?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꿈해석을 한후 술맡은 관원장과 떡맡은 관원장을 향해  “만일 당신들이 득의 하거든 나를 생각하소서”라는 의미는  현재 처한 요셉의 절망적인 환경에 결코 낙심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성도들은  역경중에도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말살하고 로봇처럼 조종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음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죄성을 부각시킵니다.  그래서 인간의 죄성이 하나님과 사람을 멀게 했다고  논제를 펼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관점의 측면에서 본다면 , 하나님은 전지하신 분이시고 , 전지(全知)하신 하나님은 인간이 죄지을줄 알고 계신 분이시며 , 그런 예견된 상황에서 인간의 죄를 허용(許容)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에덴동산에서 죄를 지은 인간은 하나님의 죄(罪의) 허용(許容) 이라는 계시적 관점에서 본다면 , 하나님은 인간에게 죄악을 허용하시면서 까지  하나님의 자기 계시 , 하나님의 존재를  하나님이 섭리를 하나님의 계시를 알리시기 원하신다

  또한  하나님의 계시적 측면에서는  죄의 허용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아가고, 깨닫고 , 하나님의 은통을 덧입을수 있는 은혜의 통로다 라고 볼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의 고백에서 하나님곁에 가까이 갈수록 인간의 죄성이 심각하게 드러나고 , 또한  그 죄성은 결국  하나님의 거룩함을  더 밝고 환하게 나타내게 하는 것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에서의 아담의 범죄는 그 죄악을 허용하시면서  죄악가운데 노출된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투영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요셉은 죄의 문제로 심각하게 절망할수도 있습니다.  요셉은 사람들에게  죄의 문제로 누명을 쓰고 죄인아닌 죄인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심각한 오해를 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흉악한 파렵치한이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위대장 보디발의  감옥에 갇혀있는 요셉에게  하나님은 한줄기의 빛이 되어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요셉을 죄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  감옥에 있다 할지라도 자유한자가 같이 살았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갖혀 있는 동안 , 요셉에게는  감옥의 모든 열쇠를 가질정도록 자유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탈출할수 있지  않습니까 ? 야간을 통해 도주할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요셉은  자신에게 허용된  그 상황을 회피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탈피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기에  감옥안에서도 누명을 쓰고 있어도 굳굳하게 견딜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다면  현제 처한 어려움을 믿음으로 떨어버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마치 요셉이 캄캄한 미래 , 한치앞도 알수 없는 감옥생활을 했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것 처럼 ,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현재 저와 여러분의 형편과 처지와 상황을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섭리를  읽어내었습니다. “아버지여 할수만 있거든 이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 동일한 말씀으로 세 번째 기도하시고 , 제자들에게 돌아와 “이제는 자고 쉬라 ” 고 하시면서 아버지되신 성부하나님의 뜻 즉 섭리를 깨닫았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순경이 아니라 역경임에도 예수님은  주저 하지 않았고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오늘 이아침에 주님앞에 나아온 오대양 육대주의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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