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설교(한영중)

성 경: 시편 23:1~6 제 목 :여호와는 나의 목자

0 1,704 2017.02.0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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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시편 23:1~6            제  목  :여호와는 나의 목자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인디언 한 부족중 특별한 성년식을 소개합니다. 인디언은 강인한 인디언으로 살아남기 위해 어린시절 남자 아이들에게 칼쓰기, 창던지기, 활쏘기 등과  같은 매우 강도 높은 무술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 남자아이가 13세가 될무렵  깊은 산 속에 데리고 가서 혼로 남겨두고 돌아 옵니다.  혼로 깊은 산속에 버려둔채 남겨진 인디언 아이는 극도의 공포감과 두려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인디언 부족 대대로 전통으로 내려온터라 , 반드시 그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두렵고 , 떨리고 극한 공포속에서 용감한 인디언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극복하고 이겨내 내야 합니다.  산속에 홀로 버려둔 아이는 극도의 공포감 가운데 절망하게 되고 ,심지어 기절하는 아이까지 생겨납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도 용감하게 그 칠흑과 같은 공포의 밤을 지새우며  용감한 인디언으로 탄생됩니다.

  성인식을 치르기 위한 인디어의 소년중 한사람은  다른 인디언처럼 깊은 산중에 내동댕이친채 어둠과 공포 두려움과 싸워야 할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밤이 깊어가자  맹수들이 울부짖는 소리와  어둠이 짙게 깔리면서 극도의 공포감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소년은 정신줄을 놓치 않기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바스락 바스락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동물의 흔적도 발견할수 없었습니다. 계속해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지만 도무지 분간을 할수 없었습니다.
 
 속으로 크게 긴장한 소년은  긴장을 끈을 놓추지 않습니다.  점점 소리가 크게 들리자 소년의 오른손은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소년의 오른손에는 만약에 사태를 대비해  사냥용 큰 칼을 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형체는 보이지 않고 점점 소리만 크게 들렸습니다.
 
소년은 그 소리가 아마 싸납고 무서운 맹수 소리로만  생각했습니다.  숨죽이며 공포감에 휩싸인 소년에게 나타난 것은 맹수가 아닌 바로 자신의 아버지 였습니다.  수년의 아버지는 아들을 성인식에 보내어 놓고 혹여모를 맹수의 공격에 대비해 창과 활로 중무장하고 밤새도록  아들곁을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인식에 아들을 보낸 아버지는  맹수로부터  불안과 공포로부터  아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밤새도록 곁에서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지키고 있는한 ,  아들은 두렵지 않습니다 무섭지 않고 불안과 공포에 떨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4절은  우리 하나님께서 목자가 되시면 두렵지 않다고 합니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아멘

 4절 서두에 보니까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 되어주시면  한가지 분명한 확신하는 것은  사망은 죽음은  결코 사람이 좌지 우지 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의지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죽음의 문턱을 경험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겠지만  일생을 살아가면서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들의 적지 않습니다.  저는 지난주 대구 호스피스 병동을 두 번 다녀 왔습니다.  그곳에는 임종을 앞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불과 몇 달전만 해도 매우 건강한 평범한 가정주부 였습니다.

  그 남편은 인도 공동체를 섬기며 돌보던  한분 이었습니다.  지난 몇 개월전만해도 건강하고 행복하던  그분이  이제는 풍전등화마냥 , 꺼져 가고 있습니다.  췌장암에 걸려 , 더 이상 손쓸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남편은  꺼져가는 심지마냥  죽어가는 자신의 아내를 향해 펑펑펑 뜨거운 눈물을 쏟아냅니다.

 그녀의 이름을 외쳐 부릅니다.  정신차리라고 고함을 칩니다.  조금만 더 살수있으면 하고 아쉬움을 남깁니다.  그러나  생명은  내가 , 내 자신도 마음대로 할수 없습니다.  정해진 시간을 살다가 이땅을 떠나는것이 사람의 생명입니다.  그리고 그배후에는  생명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사람들의 오해중 한가지는  죽음에 대한 , 생각입니다.  내가 젊고 건강하기 때문에 오래 살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나는 병들고 늙었으니  얼마살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럴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지난주 한글 교사중 한분 선생님은 충격적인 비보를 전해왔습니다.  자신의 동생부부가ㅣ 평소 등산을 좋아하고 등산중에서도 꽃이라고 부르는 암벽타기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날도  등산을 갈까  암벽을 탈까 망설이다 ,  부인의 만류로  암벽은 타지 않고  등산쪽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등산중  동료 한분이 심장마비로 큰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119에 신고하게되었고  헬기가  급파되기 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바람이 세차게 불어 헬기 접근이 쉽지 않았고  헬기가 빙빙빙 돌다가  한참후에 다시 와서  심장마비로 환자를 이송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심장마비로 이송당한환자는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바람 때문에 회항(回航) 했던 헬기 기장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헬기기장은 잠시 바람 영향 때문에  헬기가 착륙하지 못하는줄 알았는데  동일한 등산 코스에 암벽등산은 하던 사람중 한사람이 등반중 추락사고로  시신을 급하게 옴기고 오는 중이라 했습니다.

  한글학교 선생님의 여동생부부는 그냥 그런가 보다 라고 생각했지만  하산(下山)한 이후 병원에 들렀다 더욱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유인즉  암벽 등반을 하다 추락한 사망자가  바로 오늘 아침 나눠진 자신의 팀원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등산을 할까  아니면 암벽을 탈까 하여 두팀으로 나눠졌는데  바로 나눠졌던 암벽등산팀  그 팀은 자신의 동일한 팀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등산을 하던 팀에서 심장마비로 사망사고가 발생하고  또한  암벽등산을 하다 추락사고로 사망사고가 일어났으니  오늘 어느 팀에 합류해도 죽음의 현장을 피할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사망의 골짜기를 결코 피해갈수 없습니다  때로는 그 시기가 좀 이르다고 생각할수 있고  아니면 그의 죽음이 호사(好事) 라고 할수 있을지언정  결코  죽음의 관문은 그 누구도 피할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사망의 골짜기를 피해갈수 없는 인생이라 할지라도  오늘 시편기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신다면  주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신다면  사망의 골짜기 , 죽음의 골짜기는 더 이상 공포나 슬픔  혹은 아픔이나 고민거리가 될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문들이  예수믿기전에는  죽음이 공포의 대상이 될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의 공포앞에 두려움과  안타까움이 존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코 기억에 지우지 말아야할 분명한 한가지 사실중 하나는  사망의 권세를  죽음의 고통을  , 우리 인생에 있어 가장 최고의 최대의 관심사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해결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께서 부활하심으로  성독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사망의 권세가 율법의  탈을 쓰고 성도들을 공격하지만  새신랑되신 예수님을 신랑으로 모시고  영원한 생명  , 영구한 삶을 영위할수 있게 된것입니다. 할렐루야 !

 오늘 성도앞에 놓여진 사망의 골짜기 , 결코 두려움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믿기를 바랍니다.  결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믿기를 바랍니다.  성도에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처럼 ,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도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않될것입니다.

  성도에게 있어 죽음은 더 이상 죽음의 의미가 아닙니다.  더 좋은 세상 , 영원한 내 하나님의 집에서 안식하기 위한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과정으로써의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죽음은  옛사람은 완전히 죽고 새사람으로 완전히 영화의 단계로 거듭니는 과정입니다

  그리스도안에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사망이 결코 왕노릇 할수 없는 눈물도 없고 슬픔도 고통도 아픔도 존재하지 않는 영원한 삶말입니다  그 영생이 오늘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믿고 따르는 저와 여러분에게  축복의 선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내영혼이 은총입어  ♬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되심을 믿습니까 ?
 예수님께서 나의 목자가되시면 오늘 본문 1절에 부족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영어 성경을 보면  시편 1편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다윗은 예수님께서 나의 목자이시면 나는 더 이상 그 어떤 것을 필요치 않는다고 햇습니다.
다함께 1~3절을 함께 읽습니다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예수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시면 , 더 이상 그 어떤 것이 필요치 않습니다.  이세상을 살아가는사람은 늘 목이 마릅니다.  많이 가지고 있어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이 가지려 하고 ,  세상으로부터  갈증을 해결하려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성도의 갈증을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또한  성도들이 갈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  진주를 진주로 알지 못하니 , 갈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 우리 구주 예수님으로부터 생수의 강이 흐르고 있는데 ,  양식아닌 것들을 위해 값을 지불하며  ,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이 가치있고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를 모르기 때문에 갈증합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이세상에 돈으로 값으로 계산할수 없는 가장 고귀한 생명 즉 영생을 소망의 선물로 받았습니다  값없이 은혜로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값을 지불하고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셔서 대신 죽으시고  영생을 보장받았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영생보다 이세상에 있는 것  눈에 보이는것 손에 만져지는 것  등등으로 그러한 현상적인 것을 유물적이고 물질적인것을 더욱 귀하게 생각하는 헤프닝을 자아냅니다.

  오늘 성도에게는  예수님께서 나의 목자가되시니  이세상의 그 어떤 것들로도  예수님을 대신 할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 보다 소중한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보다 더 존귀한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구주가 되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시는 것을 확신하신다면  나의 영혼이 살아난다고 합니다 3절입니다.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아멘

 예수님은 우리 영혼을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죄와 사망에서 저주 건져주시는 분이시며 의의길로  믿음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인생의 만족은 이세상에 있는 것으로 결코 만족할수 없습니다. 

  내영혼이 만족해야  참 만족에 이르는 것입니다.  영혼이 즐겁고 감사해야 인생이 행복합니다.  영적만족이 있어야 삶의 기븜이 넘칩니다.  내영혼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해야 삶의 기쁨이 넘치고 행복감이 젖어듭니다.

  내영혼이 잘되어야 범사에 기쁨이 넘칩니다.  이러한 귀한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주님이 저와 여러분의 목자가 되심을 확신할 때 오늘 본문의 6절의 말씀처럼  주님을 송축하게 될 수 있습니다. 6절입니다.

  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영혼이 회복되어야 주님을 송축할 수 있습니다. 
노래는 즐거움의 극치입니다.  즐거움이 최고조에 달할 때 , 노래는 제대로 표현이될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일을 즐길때 흔히들 쓰는 표현이 ‘노래한다’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노래는 즐거운 일입니다.  하나님을 송축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영혼이 즐거울때 하나님을 송축할수 있습니다.  우리 영혼이 자유로울때  우리 영혼이 충만할 때  주님을 송축할수 있습니다.

    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많은 자녀를 기르며 살았는데, 매일  습관처럼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습관은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날 때 자녀로 하여금 주기도문을 외우게 하였습니다.  기도의 습관을 붙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저녁에 잘 때도 똑같이 그 일을 반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매일 한 시간씩 기도의 시간을 할애하여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기도드렸습니다. 어머니는 하루 일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을 기도하는 일이라 생각했고 자녀들에게  힘주어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기도하는 일을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 기도가 즐겁다는 것은 하나님을 찬양한다 , 감사한다는 의미와 동일하게 생각할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평생 소원이 하나님을 향해 찬양과 기도 드리는 일이며 그일을 즐겁게 생각한 것입니다.  놀라운 일은  그 어머니의 기도가  찬양이  당시 18세기 부패한 영국을 구하는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당시 영국교회는 부패의 온상이었습니다.  종교와 정치가 결탁해 , 매우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술집이 창궐하고 부정부패가 만연하며 폭력사태가 빈번했습니다.  교권이 하늘을 치솥았고 사회분위기는 매우 흉흉했고 경제사정도 아주 나빴습니다

 그때  어머니의 기도소리를 듣고 어머니의 찬양소리를 듣고  아침에 일어나면 주기도문 저녁에 자기전에 주기도문을 외우며 기도를 배웟던 어머니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 가운데 한사람이 바로  영국 종교계의 새로운 변혁의 역사를 일으킨 존 웨슬리 였습니다.    기도하던  어머니는 유명한 존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 였습니다. 

  존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의 기도는 어떠했을가요  그녀는 ‘한 주일을 위한 기도’로 매일 기도의 제목이 바뀌었습니다  그 중 토요일 아침에 드리는 기도, 의 제목은 ‘즐거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는 제목입니다.
 평생토록 주님을 찬양하고 송축하며 그렇게 살기를 희망한다는 내용입니다.  어머니의 기도를  곁에서 들으며 자란  자녀들은  어머니의 기도되로 쓰임을 받게 된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목자가 되어주시니 ,  부족함이 없는줄 믿습니다.  그 주님을 송축하기에 부족함 없는 축복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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