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설교(한영중)

성 경:엡1:3~5 제 목:행복한 인생

0 1,586 2017.02.0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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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엡1:3~5                    제  목:행복한 인생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얼마 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사진 몇 장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그 중 몇 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중국 랴오닝(遼寧)성의 선양(瀋陽)이라는 곳에 살고 있는 한 젊은이의 가정입니다. <사진1>  조그마한 공간에 살림살이를 차려놓고 아내와 이제 갓 돌이 지난 아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사진2> 그 좁은 공간에는 침대와 컴퓨터, 냉장고와 TV 등 생활에 필요한 가구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집에 특이한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사진을 보면서 이 집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하셨습니까? 집 안에 남자 화장실에나 있어야 할 소변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한 개가 아니라 2개나 말입니다. 원래 이곳은 한 호텔의 화장실이었습니다. 정링쥔(曾令軍)이란 청년이 이곳에 살게 된 사연은 이렇습니다.

 지린(吉林)성 퉁화(通化)시가 고향인 청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업대학에 가려했지만 한해 5,000위안(약 90만원)이나 되는 학비를 감당할 수가 없어 진학을 포기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 선양(瀋陽)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재주도 없던 그는 그곳에서 구두닦이를 시작으로 구두수선과 열쇠수리를 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수선공의 수입으로 내집을 마련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던 중 6년 전인 지난 2006년 한 친구의 소개로 사용하지 않는 호텔 화장실에 싼값에 세 들어 살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곳에 살면서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게 되었고, 이 화장실 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아들까지 낳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화장실이 즐거운 나의 집이다. 아내를 만나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건강한 아기도 태어났다. 난 가진 것이 많은 행복한 사람이다.”고 말입니다.

  또 한 장의 사진을 보여 드립니다.  이사진을 보시면 무엇을 느낍니까?  아마 낯익은 얼굴이며  적어도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사람은 세간에 알려진 ‘행복 전도사’라는 명성으로 전국민의 사랑을 받아오던 최윤희 씨입니다  그런데 행복 해야할 그녀가 자살로 일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자신뿐 아니라 , 자신의 남편을 동반한 동반자살로 말입니다.  그녀가 남긴 마지막 유서에는 이런 사연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지난주 친구 목회자의 짧은 생을 화장으로 마감하고 다시한번 삶을 돌아보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당신은 행복하십니까?”

 그러자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치면서 잠시 멈춰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동일한 질문을 합니다 “당신은 행복합니까”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이 질문은  우리 인생에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행복은 전염된다”는 책이 있습니다. 이책은 하버드 의대의 티컬러스 교수가 집필한 책인데  그는 의사로서 재직하면서 특별히 말기암 환자에 관련해 지난 10년동안 연구한 연구 결과물을 내놓았습니다.

  특별히 말기암 환자가 배우자와 가족 그리고 그를 알고 있는 지인에게 얼마나 큰 영향과 충격을 주는가에 대한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그 연구결과는 3단계의 영향법칙을 소개했습니다. 

 첫 번째단계는 친구이고 두 번째는 친구의 친구이고 세 번째는 친구의 친구의  친구라고 소개했습니다.  이 3단계의 영향법칙은  1단계 친구가 행복할 경우  내가 느끼는 행복감은  15%정도라고 했고 친구의 친구가 행복할 경우 내가 행복할 경우는 10% 그리고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행복하면 내가 행복할 경우는 6%의 수치로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3단계 영향법칙의 연구 결과는 가까이 있는 있는 친구의 행복도의 나의 행복도가 비례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가까이 있는 친구의 행복도가 15%인데 , 친구 한명이 추가되면  친구 한사람당 9%의 행복도가 추가된다고 했습니다. 이 연구는  가까이 있는 친구 5명이 행복하다면  나의 행복도는 최초 15% 플러스 나머지 4명의 친구 9%씩 더하여 합하면 36% 토탈 51%의 행복감을 느낄수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행복감을 느끼는 친구가 1마일 즉 1.6km 안에 살고 있으면 내가 느끼는행복감은 25%나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행복감을 느끼는 이웃이 옆에 살고 있으면  나의 행복감은 무려 34% 증가 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주변에는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내 주변에 행복한 사람이 많아지면 나도 더불어 행복해집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내 주변의 사람이 행복해 짐으로 내가 행복해 지는 것이 법칙이라면  만일 , 내가 행복하다면  나로 인해 다른 사람 , 또한 행복해 질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내가 행복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자신이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감을 느낄수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이 부모형제 이웃 친구 ....그들의 행복지수는 여러분의 행복지수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의 행복지수는 우리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지난주 월요일 친구 목사의 장례식을 마치고 , 대전 선교센터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고신 사회복지발기총회가 열렸고 , 분야별 위원장을 선출해 교단내 사회복지를 활성화 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내려 놓는 기쁨  , 우리가 이세상에 대해 내려놓는 순간 ,  우리는 행복해질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그동안 사역을 하면서  이리저리 쉼없이 뛰면서 동분서주 해왔습니다.  일년내내 쉬는 날이 하루도 없었습니다.  목사님들이 노회에서 야유회를 가는데도 한번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이  별것인양 생각했습니다.

 그냥 앞만 보고 달려 왔습니다.  밥을 먹어도 “폭풍 흡입” 5분안에 다 먹을수 있는 메뉴만 주문합니다.  그 이름하여  중국집 , 김밥천국  .... 그냥 가면 바로 먹을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참 어리석은 짓이었습니다.  제가 바쁘니까 ?  제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바쁨니다.  그리고  하목사는  바쁜 사람이다 라고 인식이 되어버렸습니다. 지난 목요일 소속해 있는 노회에 목사님 한분이 은퇴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몇 명이 함께  위로차 축하차 식사를 하고 담소를 했습니다.  함께 참석한 목사님들이  “아이구!~ 바쁨 하목사님이 오셨으면  다왔다~~!  ”하며 놀려됩니다.  그리고 식사를하고 목사님들은  차를 한잔 마시러 간다고 하며 “하목사님은 시간이 없죠~~~! 하고 뭍을때 ,  스케줄은 꽉~~ 짜여 있었지만  아니요!!  괜찮습니다.  함께 같이 갑시다.

  하고  동행을 했습니다  그러나 커피솦 입구에 도착했을때 급한 전화가 걸려와  더 이상 동행할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생활패턴이 바뀌고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제가 바쁘니까?  제 주변의 사람들이  덩달아 바쁨니다. 함께  이야기도 하고 싶고 , 교제도 하고 싶고 식사도 하고 싶고,  놀고도 싶은데 ...워낙  바쁘니까  함께 식사도 같이 못합니다.  그래서 늘  언제나 , 우리 목사님은 바뻐~~ 라고 인식되어 있습니다.

 어제 저녁이었습니다.  조기형제가  목사님~  오늘 이기수 생일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  그래요~  하고서는 축하한다는 한마디로  때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기형제가 일부러 목사님~  오늘 기수형제 생일입니다.  라고 말한데는 저는 분명 주님의 음성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조기형제를 다시한번  불렀습니다.  그래!  오늘 기수 형제 생일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어.

 그러자 조기 형제가 , 빨리 쉼터에 가고 싶어요 ,  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교회 곳곳에 공사할것이 많이 남아 있거든요 그래서!  교회에서 퇴근하는 시간이 보통 12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 제 마음에 그래 기수형제 생일이구나!  외국에서 맞는 생일 누가 한번 차려줄수 있을까 ?  없지 , 아무도 차려주지 않는 생일 , 얼마나 쓸쓸할까 ?  그리고는  냉장고를 열어 고기를 준비하고 , 불판을 준비하고 그러자 한국어를 가르치던  선생님이  “오늘 무슨 날이에요 목사님!  하고 뭍길래 ... 네~  오늘 이기수 형제 귀빠진 날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어~~!!  그러면 케익이라고 하나 준비해야 겠네요. 하면서 ... 제가 케익하나 준비할까요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괜찮지 않을까요 라고 햇지만  선생님은 굳이 빵집에 달려가 커다란 케익을 내미는 것입니다.


 여러분 !  이제는 함께 밥먹어요 , 여러분 생일에 초대해 주세요.  초대해서 함께 식사도 하고 교제도 하고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하고 ,,,, 할렐루야그렇습니다  내가 행복해야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수 있습니다.  내가 즐거우면  또한 다른 사람도 즐거울수 있는 것입니다.

  제 아내와  이번주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는 외국인 사역이 즐겁지 않으면 주님께서도  우리를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외국인 사역을 감당할때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해야하지 않을까요 ?

  억지로 사역을 감당한다면  그보다 더 괴로움을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 자신이 행복하십시오.  그리고 행복한 일이 있거든  많이 알리십시오 .  행복한 바이러스 많이 전파하십시오  그리고 밥먹을 기회가 있거는 많은 사람들을 청해 함께  행복을 나누세요.  그리고 여러분의 인생이 행복해 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행복하면 세상이 바뀝니다.  만일 저와 여러분이 행복하며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그러면 본인이 행복해 지려면 선행적으로 인식해야 될일이있는데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3절 말씀입니다  “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아멘

저와 여러분이 행복한 삶을 살려면  선행적으로 성도의 “존재감을 인식”해야 합니다.  인간의 존재감은 어디로부터 옵니까 ?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감사함으로 자신의 존재감이 존재합니다.  부모님은 존재는 나의 삶의 시작입니다.  나를 이땅에 있게 하신 분은 부모님입니다.  매년 5월 8일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 합니다.  그래서 부친(父親) 모친(母親) 이라 합니다 특별히 친(親)자는 설립(立)자 밑에, 나무(木)자를 쓰고, 볼 견(見)자를 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  어머니 아버지가  나무 위에 올라가 자식이 어디에 있나 ?  어떻게 살고 있나 ? 무엇을 하면서 살아갈까? 하는 것을 친히 본다는 의미로 늘 부모의 마음은 자식 걱정입니다.

  이세상에서  여러분 자신을 가장 아껴주고 생각해 주는 사람은 부모님입니다.  부모 많큼 자식 잘되기 바라는 사람은 이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세상에서 여러분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부모님입니다. 
 
  어떤 젊은 여집사님이 3살된 아이를 사고로 잃었습니다.  젊은 여집사님은 통곡하며 땅을 치면서 웁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울음을 그쳤습니다.  장례식을 진행하는 동안에도 차분하게 장례를 치릅니다.  그런데 , 고요한 장례식장에 계속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소리는 젊은 집사님의 어머니인 권사님이었습니다.  권사님은 계속해서 소리를 내면서 흐느낍니다.  결국 장례를 집례하던 목사님이  권사님에게 권사님 이제 슬픔을 그치십시오.  보십시오 따님인 집사님도  울음을 그치고 , 차분하게 장례에 임하지 않습니까 ?  이제 그만  손주를 죽음을 잊어버리고  더 좋은 천국에 갔다고 믿으세요!!

 그러자 권사님은 목사님 맞습니다.  저는 제 손주가 천국간 간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슬퍼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 슬퍼하고 우는 것은 손주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잃고 마음 아파할 제 딸 때문에  슬퍼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모님은 항상 비가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자식걱정입니다.  손주가 죽었는데도  손주 때문에 슬퍼하는 것보다  딸의 마음을 헤아려 우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 에베소서는  1장을 보시면 성도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 그리고 2장에서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설명하고 3장에서는 그 구원의 사역이 교회를 통해 이루어 질것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4장에서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어떻게 믿음으로 자라며 봉사하는가에 대해 기록했고  5장에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제시를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그가운데 부모님에게 효도하는일은 매우 중요한 삶의 기초이기에 6장을 결론지으면서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아무리 바쁜 세상에 산다고 할지라도 부모님의 은택은 결코  잊어서는 않됩니다. 할렐루야 그러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4절 말씀을 보시면  이렇게 기록하고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아멘

오늘 저와 여러분이 행복해 지려면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많은 하나님의 뜻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가지는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성도된 저와 여러분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참 행복해지기를 원하십니다.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생명을 주시어 이땅에 태어난 하나님의 목적중 한가지는 저와 여러분이 이땅에서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참 행복이 무엇입니까 ?  참 행복은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거룩하고 흠없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거룩하고 흠없게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때 반드시 제물을 드립니다.  그런데 그 재물은 특별한 구별점 몇가지가 있습니다  그가운데 한가지는 흠이 없는 재물이 되어야 합니다.

  상하거나 , 부러지거나 , 부상당하는 재물을 하나님께 드릴수 없습니다.  그래서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전에  제사장은 그 재물을 점검합니다.  재물에 흠이 있는지 아니면 병이 들었든지  아니면 상했던지 등등의  점검을 하고 이상이 없을때 하나님께 드리게 됩니다.
 한글개역 [출 29 : 1]  너는 그들에게 나를 섬길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여 그들로 거룩하게 할 일이 이러하니 곧 젊은 수소 하나와 흠 없는 숫양 둘을 취하고 
 
 한글개역 [레 1 : 3]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릴지니라 
 
 한글개역 [레 1 : 10]  만일 그 예물이 떼의 양이나 염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 

 아멘 .  오늘 본문의  하나님의 뜻 가운데 한가지는 저와  여러분이 흠없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자칫 잘못이해하면  굉장히 수준높은 도덕적 견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오해를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에베소서는  그러한 도덕적 높은 견지로써의  ‘거룩’  혹은 ‘흠없는’의 측면이 아닙니다.  지난 주에 설교했던  ‘율법’과 ‘복음’을 올바로 이해 하신 분들은  오늘 설교를 이해하는데  아주 쉬울 것입니다.

  율법은 폐해지지 않음에 한계점을 가집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주고 , 성도들을 그리스도 예수님께 인도하는 길잡이 ‘몽학선생’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흠없게 하신다는 것은 흠없는 예수님 처럼  온전하게 하신다는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소망이 되신것 처럼 우리에게도 우러한 소망을 주셧다는 것입니다.  이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을  하나님의 뜻 이라고하는  단어 안에 포함하셔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이땅에 살면서 행복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세전부터 성도된 저와 여러분들을 하나님나라에 영원토록 살게하시려고 ,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경배하고 나아가 하나님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돌리게 하시려고  이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땅에 삶이 행복해지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하나님은 우리를 행복하게 살게 하시려고 ,  예수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시고 한점의 흠도 없고 티없게 하셧습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 귀한 깨달음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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