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설교(한영중)

성 경:눅17:12-21 제 목 : 하나님 나라

0 1,601 2017.02.03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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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눅17:12-21              제  목 : 하나님 나라
 
   
 12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12 As he was going into a village, ten men who had leprosy met him. They stood      at a distance
  13 and called out in a loud voice, "Jesus, Master, have pity on us!"
  14 When he saw them, he said, "Go, show yourselves to the priests." And as      they went, they were cleansed.
  15 One of them, when he saw he was healed, came back, praising God in a loud      voice.
  16 He threw himself at Jesus' feet and thanked him--and he was a Samaritan.
  17 Jesus asked, "Were not all ten cleansed? Where are the other nine?
  18 Was no one found to return and give praise to God except this foreigner?"
  19 Then he said to him, "Rise and go; your faith has made you well."
  20 Once, having been asked by the Pharisees when the kingdom of God would      come, Jesus replied, "The kingdom of God does not come with your careful        observation,
  21 nor will people say, 'Here it is,' or 'There it is,' because 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

세상은 보이는 세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 보이지 않은 세계도 공존합니다.  사람들이 숨쉬는 공기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 공기가 없으면 사람은 살수 없습니다.  우리 곁에서 호흡할 수 있도록 제공되는 신선한 공기는 매우 고마운 존재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사람의 인성과 지성과 감성을 성장시켜 인격적인 사람으로 성장시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영적 세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믿음을 성장시킵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통해 전인적인 사람 , 즉 성경은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모양 ,이라고 하기도 하고 , 온전한 사람 , 혹은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르는 단단한 식물믈 먹는 사람이라 일컫습니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통찰하고 이해하고 나아가 믿음으로 뿌리내리고 자리잡고 또한 그 보이는 세계속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음으로 인식하고  인정하고 확신할 때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가치는 더욱 고조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영적세계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의 눈 , 믿음의 눈이 열리면 볼 수 있는 신기한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서 믿음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믿음의 눈이 열리면  이세상을 더 이상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눈이 열리면  이세상을 살아갈 때 이세상은 아직도 살만한 세상이라고 누낄 수 있습니다.

  또한 믿음의 눈이 열리면  이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가치기준이 분명해집니다.  삶의 목표와 목적이 분명해집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하며  어디에 중점을 두고 살아가 할지를 분명코 깨닫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아침에 주님앞에 나아온  오대양 육대주의 성도여러분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지만 믿음이라는 통로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 보고 , 이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한 명쾌하고 분명한 해답을 얻으셔서  이제까지도 가치있는 인생을 살아왔지만 남은 인생여정 축복된 삶의 여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1.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성경 본문 15절 말씀을 다시한번 읽어드리겠습니다.
 
 15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5 One of them, when he saw he was healed, came back, praising God in a loud      voice.

  주어진 성경본문의 내용 줄거리는 이러합니다. 10명의 문둥병자(한센스병)를 예수님께서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제사장에게 보이라고 하신 구약 성경의 가르침대로 순종한 문둥병자는 고침을 받아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당시 문둥병은 불치병으로 고칠 수 없는 고질병 이었습니다. 외적으로 고통이 중과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고 , 함께 살 수 없어 이곳저곳 떠돌아 다니며 ,유랑하며 방랑하며 정처없이 외롭게 살아야만 했습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합니다 . 사회적 동물의 의미는 서로 서로 공동체를 이루고 가족을 이루고 집단을 이루어 함께 도우며 사랑하며 살아가는 공동체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문으로 사람인자(人)는 서로 의지하며 도우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사는 의미를 말합니다. 혼자살수 없는 존재라는 의미이죠. 그러나 문둥병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사회로부터 격리당하고 심지어 배척과 멸시, 돌로 쳐서 내침을 당하는 냉대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고통의 나날이었고 연속이었습니다.

  또한 문둥병은 내적으로 몸이 뭉개지고 고름이 흐르고 살갗이 썩는 고통이 중과했습니다.  자신의 몸이 썩는 아픔은 그 어떤 고통보다 큰 절망감을 안겨줍니다.  몸이 썩는다는 의미는  죽음이 진행되는 현장을 눈으로 목격하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몸이 썩는 과정을  자신의 눈으로 목격하는  문둥병자는 내적인 큰 ~ 절망감으로 말할수 없는 내적 고통이 수반됩니다.

  이런 상황에 노출된 문중병자가 깨끗하게 치료 받았을때 그 기쁨은 말로써 표현할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내용은  10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문둥병에서 치료받아 건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문둥병에서 고침받고 치료받아 건강한 사람이 되었는데 , 정작 고침을 주신 예수님께 고마움과 감사의 표현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구사일생(九死一生) 죽음의 위기 앞에서 , 생명을 보존하고  위기탈출을 했다면 당연히 자신의 생명을 구출해준 이에게 감사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문둥병에서 고침을 받았다는 의미는 죽음의 문턱에서 구출받은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문둥병자의 사건은  문둥병자를 죄악으로 영원히 지옥형벌을 면치못하는 인생을 의미합니다.  죄 때문에 죽음이 왔고 ,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인생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만인제사장 되신 예수님께 믿음으로 우리의 몸을 보이면 ,  우리의 연약을 아시고 십자가의 은혜로 대속해 주심으로  죄악에서 건짐받고 구원받게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은 이 구원의 은혜를 깨달은 문둥병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고백하는 장면입니다.  자신의 죄의 문제가 ,  자신의 영혼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시켜 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의 눈이 열리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갑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삶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추구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의 구체적인 실천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감사의 삶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께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사야서 43장 21절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창조 본연의 목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지으신 삶의 목표를 제시해 주고 계십니다. 우리 다함께 읽습니다.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21 the people I formed for myself that they may proclaim my praise.

 
  성도가 감사하며 살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무엇을 감사해야 합니까 ?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말입니다.  감사는 기적을 부릅니다.  좋은 일이 일어날 때 , 우리는 감사합니다.  그러나 좋은 일이 아닌 어렵고 힘든 상황에 , 조건이 악조건일때 ,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 어거스틴(St. Augustine) 이 설교 부탁을 받고 목적지를 향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한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곳이었습니다.  어거스틴은 길 안내자를 따라 가게 되었고  목적지를 향해 갔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을 안내하던 안내인이 그만 착각을 해 길을 잘못 접어든 것입니다.    결국 어거스틴은 그날 설교를 하지 못한채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화가 날수 있는 상황인데도 어거스틴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얼마후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어거스틴을 반대하는 대적자의 무리가 그날 어거스틴을 죽이려고  칼을 들고 숲속길을 잠복해 있었고 , 어거스틴이 지나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어거스틴이 설교하기 위해 그길을 바로 갔더라면 그만 대적자의 무리에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할렐루야!

  때로는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감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감사는 감취어진 하나님의 역사의 숨결이며 하나님이 섭리인것을 확신한다면 감사하지 않을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여대생이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영어와 또 베트남어를 복수 전공하며 , 피아노면 피아노 , 댄스면 댄스 , 찬양이면 찬양  어떤 포퍼먼서 기획이면 기획 굉장히 많은 달란트를 가진 다재다능한 자매입니다.  뿐만아니라 ,  하나님께서 원치않는 일이라면 자신에게 손해가 와도 과감하게 포기할줄 아는 매우 귀한 자매입니다.

  어느날 모기업체 에서 무료 해외 연수 프로잭트를 여학생이 다니는 학교로 공고를 내었습니다.  그 학교 학생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대학생들도 참여해  경쟁률이 매우 높았습니다.  1차 서류 심사에 통과된 학생들은 2차 면접을 통해 자신이 가진 달란트와 비젼 그리고 프로잭트에 참여하는  각오와 팀원들간의 팀웍을 창출하면서 도전했습니다.  2차 시험도 무난히 통과 되었고 ,  심사위원의 집중적인 관심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3차 관문만 남게 되었습니다.  1,2차 과정을 볼때 3차는 무난히 통과 될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3차 시험을 주일날 진행한다는 것입니다.    자매는 고민에 빠질 이유도 , 생각할 가치도 없이 과감하게 포기해 버렸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  주일은 하나님의 날입니다.  주일을 범해가면서 까지  해외 연수를 가지않겠다는 것입니다.  이미 자매는 오래전부터 주일날  치르는 국가고시 , 자격증 검정등 모든 것을 포기했던 경력이 있습니다.

  자매가 주일날 3차 시험을 포기한다고 하자 회사측에서는 3차 시험에 응시 할것을 권고합니다.  또 함께 했던 팀원도 애절하게 요청합니다.  그러나 자매는 그들보다 더욱 소중한 것이  하나님의 말슴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  더 이상    두서없이 포기하는 결단력 , 쉽지 않은 일이거니와 생각되지만 , 이미 이러한 일은 그 자매에게는 처음이 아니기에 결단은 더욱 쉬웠습니다.
 
 보편적으로 대학 2학년때는 해외로 유학 즉 교환학생으로 해외자매 대학에서 공부를 합니다.  그러나 그 자매는 교회 반주자로 봉사했고  또한 본인이 교환학생으로 가면  반주할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과감하게 포기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포기가 감사가 포함된 포기라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 인생에게 펼처진 사건이 여기에서 끝나버린다면  얼마나 무미건조 하겠습니까 ?  그 사건이 있고 몇일이 지났습니다.  그 자매가 다니는 교회에 한국어를 배우는 필리핀자매의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필리핀에서 한국대생들을 대상으로 해마다  봉사캠프를 개최하고 U.N 으로부터  봉사증서도 제공하는 공인된 단체인데 , 자매의 소식을 듣고 성령께서 마음을 감동하셔서 전액 무상으로 필리핀 봉사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섭리 앞에 놀랍다는 고백과 더불어 감사의 고백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2. 믿음으로 바로 보는 하나님 나라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 이전에는 믿음에 관련된 내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절~ 21절 말씀은 하나님나라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믿음 ---> 구원 ----> 하나님나라 이런 방식이 오늘 성경에 펼쳐져 있다는 말입니다.  다함께 20~21절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20 Once, having been asked by the Pharisees when the kingdom of God would      come, Jesus replied, "The kingdom of God does not come with your careful        observation,
  21 nor will people say, 'Here it is,' or 'There it is,' because 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

  예수님 당시 제자들과 유대인들은 하나님나라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나라에 대한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구약성경의 근거와 그 시대상 때문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나라 , 메시야 왕국이 건설될것을 예언해 놓았고  하나님나라가 임하면 왕되신 메시야가 출현할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 이스라엘은  현실적으로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고 , 식민지배에서 벗고나고픈 열망이 모든 백성들의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나라’는 큰 기대 였습니다. 
 
  우리가 읽은 20절의 바리새인이 뭍는 ‘하나님나라’의 개념도 이와같은 맥락에서 이해하시면 됩니다.  바리새인은 당시  이스라엘의 기득권자들입니다.  모든 실제적인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대부분의 바리생인  종교적인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는 사람들이었고 , 제사장 , 서기관 , 공의회회원등으로 사회지도자층이었습니다.

 그런데 , 바리새인이 예수님께 ‘하나님나라'가 언제 임하느냐고 질문했을때  옛수님께서는 그들이 질문과 상이한 , 답변을 합니다.  바리새인이 하나님나라가 어느때 , 임하느냐는 시기 , 즉 때에 대한 질문을 했을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질문과 다른 현실적 대답을 하십니다.  “하나님나라는 볼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다”  바리새인은 눈에 보이는 ‘하나님나라’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강대국 로마로부터 독립하고 , 독립후 자주 주권 국가로써의 완전독립된 나라 , 그러한 하나님나라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바리새인의 질문과  전혀 다른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하나님나라는 볼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다 ” 고 말입니다. 부연해서 22절에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라고 말하지 못한다고 일침을 가합니다.  하나님나라는 존재하지만 눈을 보는 하나님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  하나님나라를 보는 특별한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하나님나라의 장소가 확정되어 있다고 본문은 소개합니다. 21절을 보시면    “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이미 너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신 하나님나라는  눈에 보이는 나라가 아닌 , 이세상에 드러나는 하나님나라가 아닌  ,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안에 존재하는 하나님 나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눈애는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하나님나라 그 나라가 오늘 우리가 알아야할 나라인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나라는 믿음이라는 통로를 통해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를 경험하고 하나님나라의 임재를 체험하려면 ‘믿음’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  이세상에 소중한 것이 많다고 하지만 ‘믿음’을 통해 하나님나라를 볼수 있으니 ‘믿음’은 우리 인생을 학교라고 가정할 때 ‘소양 과목’ 정도로 그칠것이 아니라 , 반드시 패스해야하는 필수적 요소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서신서에 믿음을 필역할 때 믿음을 ‘하나님의 비밀’이라는 선상에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비밀의 핵심부에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했고요.
아무리 좋은 망원경이 있어도  , 아주 작은 세포조차도 분별할수 있는 현미경이 있어도 하나님나라는 결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나라는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면 쉽게 볼 수 있고 , 경험할수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알게된 그 하나님나라는 누리고  그안에서 안식하고 , 교제하고 사랑하고 섬기고 나누고 존귀와 영광과 찬양과 감사가 가득한 곳입니다  할렐루야! 

    그런 관점에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  우리가 읽은 본문 앞장의 결론이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도다’ 고 했습니다. 믿음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통로요 , 하나님나라에 이르게하는 첩경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 여전히 존재하는 하나님나라  어쩌면 그 나라를 어떤 분은 지금 보고 있고 , 경험하고 누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하나님나라를 보지 못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들에게  믿음의 통로를 통해 그나라를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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