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설교(한영중)

성 경: 히브리서 11장 1-4절 믿음이 무엇인가?

0 2,294 2017.02.03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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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히11:1~4                                 
제  목:믿음이 무엇인가 ?                          주일 낮 예배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      하느니라

 1 Now faith is being sure of what we hope for and certain of what we do not see.
 2 This is what the ancients were commended for.
 3 By faith we understand that the universe was formed at God's command, so        that what is seen was not made out of what was visible.
 4 By faith Abel offered God a better sacrifice than Cain did. By faith he was          commended as a righteous man, when God spoke well of his offerings. And by      faith he still speaks, even though he is dead.
 
남부 지방에 사는 청년이 강원도 철원에 사는 친구를 방문했습니다. 남한에서 가장 추운곳 중에 한곳이 강원도 철원지역이며 가장 추울때 친구를 방문했습니다.  지난주 목요일 금요일 강원도 철원의 기온은 영하 -22 였으니 , 체감온도를 감안한다면 아마 영하 -30도에 육박했을  것입니다. 청년은  강원도 철원의 친구와 함께  한적한 시골길로 드라이브를 갔습니다. 그들은 광활하게 펼쳐진 평야와 더불어 드넓은 탁트인 호수가에 다다랐습니다. 마치 날씨가 급강하해 호수는 꽁꽁 얼어 붙었습니다.  친구는 차를 호수 옆에 세워둔채 얼음위를 미끄러지듯 달렸습니다.

그리고 친구에서 빨리오라는 뜻으로 연신 손을 내저었습니다.  그러나 남부지방에서 온  친구는 철원친구의 행동과 달리 , 호수를 쉬 접근 할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한걸음 한걸음 마치 살얼음 위를 걷는 어린아이와 같이 조심스럽게 호수위를 밟았습니다. 그 순간 큰 굉음과 같은 소리를 내며 호수 한가운데를 질주 하는 경운기가 있었습니다. 경운기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호수 한가운데로 휭~~하니 달려 갔습니다.  남부지방에서 온 청년은 멍하니 그져  입만 쩍 벌린채 아무말도  할수 없었습니다.  친구가 소리치며 호수가운데로 오라는 손짓도 , 굉음을 내며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경운기도 그져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남부지방 청년의 행동이  호수 입구에서 안절부절 하며 주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강원도 철원의 얼음에 대해서 , 호수가를 단단하게 얼어붙은 얼음장에 대해서 전혀 알지못했고 또한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경운기를 몰고간 농부나  철원 친구는  호수의 얼음을 잘알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얼음위를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아니!  얼음위를 지나간다는 표현보다 얼음위에 ‘즐긴다’는 표현이 적절할것 같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 인생이 하나님을 아는 것과 동일한 상황이라 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것 바로 이러한 차이가 아닐까요 ?

인간이 하나님을 알아갈 때  비로소 신앙인격 즉 믿음이 자랍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하나님을 알아갈 때  성장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인간의 편에서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의미는 굳이 신학적 토대위에 놓자면 하나님의 계시가 성취된다고 볼수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  사람이 스스로 신을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적 배려가 그 배후에 존재한다고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여건과 환경과 상황과 사건을 전개해 나가신다 라고 볼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을  ‘ 계시 언약적 관점 ’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계시 언약적 관점의 가치가 우리에게 조성되고 나아가 , 생각과 삶의 패턴이 정착되어야 할것입니다.  계시 언약적 관점을  한마디로 압축하여 요약한다면  모든 생각과 가치 중심을 ‘ 자아중심 ’에서 ‘ 하나님 중심 ’으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읽은 히브리서 11:1~4절의 말씀은  ‘ 믿음 ’ 이라는 주제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좋은 믿음 갖기를 원하고 ,  좋은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선행적으로 좋은 믿음의 기준 ,  믿음이 무엇인가 ? 하는 가치 정립이 되어야 합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믿음은 ‘ 자아 중심적’ 입니다.  믿음을 정의할 때 , 믿음의 기준을 본인 스스로 정해놓고  그 수준에 도달하면 만족감을 가지고 성취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믿음이 좋은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맹신이며 미신이며 잘못된 믿음의 정의입니다. 예를들면 , 어떤 나무가  혹은  큰 바위의 위용 때문에 , 그 앞에서 엎드려 절을 하면 자신이 소원이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큰 바위에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조각합니다.  또한 큰 나무에 형형색색의 줄을 휘두릅니다.  그리고 거기에 자신이 소원하는 소원을 기록해 꼽아 두기도 합니다.  나아가  큰 바위와 큰 나무 앞에 자신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넙죽 업드려 절을 합니다.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 백번 이백번 오백번  일천번 이천번 삼천번 .....  이러한 행위는 올바른 믿음이 아닌 맹신(盲信)이며 , 심지어 천번을 엎드려 절하고 삼천번을 절하는 것을 통해 자신 스스로의 만족함을 가지려할 뿐입니다. 천번동안 엎드려 절을 하면 얼마나 힘들고 고달프겠습니까 ?  또한 삼천번을 엎드려 절을 한다는 것은 보통의 인내심과 체력을 겸비하지 않으면 힘든일입니다.  천번을 절하고 삼천번을 절하기를 성공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얼마나 자신 스스로 만족감을 가지겠습니까 ?

만족감이 충만 할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행위가 믿음이라고 정의할수 없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결코 오늘 우리가 정립해야할 믿음의 정의가 아니라는 것이니다.  이러한 행위는 잘못된 믿음의 가치에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믿음의 올바른 정의를 정립하는것 정말 중요합니다.  올바른 믿음은 저와 여러분들의 삶을  윤택하게 할것이고 , 삶에 대한 행복감과 존재감을 극대화 할것입니다.  나아가 올바른 믿음의 정의는  온전한 인격체로써 삶을 영위 할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목표를 염두에 두고 ‘ 믿음 ’ 이라는 정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  1절에  ‘ 믿음은....  정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매우 중요한 구절입니다.  ’믿음은 ...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이라 했습니다. 이 구절을 잘못해석 하면 ‘ 믿음은 자신이 소원하고 희망하는 것을 성취하는 것이다.’  라고 착각을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자신이 희망하고 소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것 , 내가 희망하는것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믿음이라 가정한다면 그 믿음의 정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는데 ,  우선  히브리서 성경이 기록되었던 연대를 기준해보면 60년 경이라 할 때  그 시대를 기준으로 미래에 가장 큰 잇슈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믿음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의 핵심은 아직 이루어 지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분명한 사실이 성취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 하신다고 하신 언약이 분명하게 이루어진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를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  점장이도 아니고  미래학자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라고 강조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약속했습니다.

한걸음더 나아간다면  아직 성취되지 아니한 , 미래 사실에 대한 사실이 성경 요한 계시록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약속한  요한 계시록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이 약속을 믿고 , 믿음으로 인내하고 기다리고 , 소망하는 것입니다. 믿지 못하겠다고요 !!  그래서 히1:1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라고 끝내지 않고  ‘ 보지 못하는 선진들의 증거니 ’ 라고 했습니다.  다시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그러나 믿지 못하겠거든  선진들의 증거가 있지 않습니까 ?

그 선진들의 증거가 무엇입니까 ?  2절을 보십시오 .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가 기록된 시점에서 선진들은 누구입니까 ? 초림하신 예수님을 기다린 사람들과 그들을 직접 만나 목격하고 약속을 받은자들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초림하실 메시야 , 구원자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기다렸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했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기다리던 메시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났습니다. 수백년 수천년전  예언되었던  하나님의 그 신실하신 약속이 성취된 것입니다.  그리고 직접 목격하고 경험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목격한 수많은 증인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도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 믿음은 무엇인가 ? 적어도 믿음은 어떤 나의 소원이나 희망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세상을 향한 놀라운 계획과 뜻을 믿고 따른 것입니다.  그 사실에 동의하고 , 그사실을 확신하고 나아가 순종하며 그 하나님을 역사를 찬송하며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오늘 본문 3절 말씀에는  이러한 사실을 기록해 놓은 것이 바로 성경말씀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자기 계시  방편으로 성경을 기록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계시 언약적 관점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행동하는 모든 신앙행위를 말합니다.  믿음의 관점을  내가 세운 기준을 가지고 믿는 것이 아니라 ,  성경에서 약속하신 그 약속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 이후에는 이러한 믿음의 관점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했던 믿음의 조상들을 증인으로 내세움니다.  4절에는  아벨에 관련한 믿음을 정의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벨을 통해 , 그리스도인의 직업관 , 그리스도인의 비즈니스 , 기독교인의 직장생활 , 등을 조명할수 있습니다.

오늘 이 관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최근에는 주일의 개념이 퇴색해 가는 위기에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근거로  ‘안식일’에 대한 정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의 정의는 ‘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라’ 고했고 ,  안식일에 일하지 말며 , 가축이나 종들도 안식 할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까운 일은  안식의 참의미를 단순한 일하지 않는 주일로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라는 의미를  계시 언약적 관점으로 조명해본다면 ,  선행적으로 안식일은 6일동안 열심히 일하고 , 제칠일째 되는날 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단순하게 쉰다는 의미를 넘어선 ,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완성에 초대되는  축복된 안식을 의미합니다.
 
 6일동안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 제 7일째 되는 날  안식 하시면서 첫 사람인 아담과 하와에게 안식일을 허용하셨습니다.  이 안식은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완성하고 축하하는 안식입니다.  그런데 제 6일째 지음받은 아담과 하와에게는  그 안식이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축하무대에 초대받은 안식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안식일은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 인생에게 맡겨 주시면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을 다스리고 지키라고 하신 그 축복을 감사하며 하나님의 창조를 송축하며 영광을 돌리는 안식일로써의 주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주일을 지켜라고 하는 율법적인 조항으로써 안식이 아니라 ,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그 놀랍고 오묘하신 그 축하의 무대에 그 파티에 우리를 초청해 주신것입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이 안식일 되게 하기위해 , 그리스도인의 직장생활 직업과 비즈니스관은 어떠해야 하는가 ?  오늘 본문의 아벨을 통해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벨은 양치는 자입니다.  아벨이 양을 칠 당시 양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것은 성경 창세기 노아의 홍수 이후라고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아벨이 양 치는 직업을 가지고 양을 치는 목적이 무엇이었을까 ?  양고기도 먹지 못하는데 , 그 양을 친 목적은  양은 당시 예배를 드릴때 ‘제물용“이었습니다. 
 
양은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제물로 드리는  제물로써의 양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벨이 양을 친것은 ,  자신이 먹고 ,입고 ,살기위한 방편으로써 양친것이 아니라 ,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한 방편으로 양을 쳤던 것입니다. 양고기를 먹을 수 없다는 의미는  그의 인생이 먹고사는 문제를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함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그리스도인의 직업관은 여기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찿아야 합니다.  직장을 다니는 목적이 무엇인가 ?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 사업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 할렐루야! 

우리가 공부를 해서 좋은 직장을 희망하고 , 좋은 직장을 통해 사회원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궁극적인 목적도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계시 언약적 관점에서 직장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 하나님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직장을 통해 , 혹은 사업을 통해 하나님 자신을 계시 하시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을 계시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나타내기 원하신 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습니까 ?  믿음으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아벨이 어떻게 하나님을 나타냈나요?  아벨은 돈되지 않은  양치는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아벨을 통해 자기 계시의 수단과 방편이 되는것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벨이 양을 치는데 고기를 먹지못하고 , 경제적인 이득이 되지 못한다면 , 결국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4절에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빛은  성도의 착한행실 이라고 했고 , 에베소서 기자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성도를 창조한 목적을  착한일을 위해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성도된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 하나님을 계시 하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나타내고 하나님을 비취게 하고 하나님을 투영하게 하시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는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 계시는 성도를 통해 성취 통로로 사용하신 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어떻게 전해집니까 ?  전하는 자들을 없으면 어떻게 들으리요 라고 했습니다. 복음이 말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  성도들의 착한행실을 통해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음증거는 얼마나 중차대하고 요긴한 일이었기에 , 천사에게도 맡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된 하나님의 사람 즉 성도에게 맡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계시가  어떻게 성취됩니까 ?  특별한 하나님의 말씀 그자체는 이미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을 통해 그 계시된 특별한 하나님의 계시를 증거하는 수단과 통로로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가  하나님의 언약 계시가 증거되고 전파되어  든든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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